욥기 16장
1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5절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 근심을 풀었으리라
위로자는 상대를 강하게 하고 근심을 풀어주는 자이다. 위로의 자리에서 상대의 문제점을 찾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읽어주는 일일 중요하다.
6-14절 그가 나를 치고
'주께서 나를 ~하게 하시고'의 반복.
욥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괴롭게 하고 공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외치셨다.
실제는 사단이 그를 괴롭게 하였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셨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다. 최근 총리 후보자의 일제 침략은 하나님의 뜻이라 다른 발언이 논란이 되었는데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15-17절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욥은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죄가 없음을 말한다.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고문 속에서 결백을 주장하다가 고통을 못 이겨 죄을 지었다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과연 의롭다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친구의 공격이 있었는데 이 논리 앞에 누가 감히 의롭다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여기에는 의로운 자의 고난이라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여러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믿음에 붙어 있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기 원하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결국에는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가 묻어있다.
19절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데 계시니라
21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6-14절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격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욥은 하나님만이 증인, 중보자, 중재자가 되어주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불평과 하소연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분만이 나의 희망이라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