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7:1-28:2
원수의 땅에서 살지라도
다윗은 두 얼굴의 사람이다. 26장에서 사울을 살려줄 때는 성자요 하나님의 때에 민감한 신앙인이다. 그러나 27장에서는 영락없는 현실적인 타산가요 거친 세파를 홀로 뚫고 가다가 크고 작은 작은 상처를 입으며 성장하는 야심적인 경세가다. 그는 절제된 신앙인이면서도 동시에 범람하는 욕망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조심스럽게 묻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열정으로 앞서가는 사람이다. (김회권)
다윗은 원수의 땅, 블레셋 지역의 가드로 사울의 추격을 피해 망명한다. 약속의 땅이 아닌 낯선 땅, 비굴함을 삼켜야 하는 환경이다. 이스라엘의 적이긴하나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을 전멸시킨다. 또 아기스의 적을 공격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김회권의 말처럼 '구름 위를 걷는 영성가가 아니라 진토에 입술을 대고 살아가야 하는 피조물의 비릿한 궤적'을 보게 된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성경은 즉각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후에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가 흘린 피의 책임을 물으신다. 허용된다고 해서 칭송할만한 덕은 아니다.'
다윗의 행동을 평가하기에 앞서, 다윗은 다름아닌 나의 모습을 보게한다. 신앙인이면서도, 욕망에 사로잡히는 나 말이다. 이런 다윗이지만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이상이 아니다. 비릿함, 역겨움, 구차함이 뒤범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심을 어렴풋이 보게 된다.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고 타협과 이중성이 목표는 아니다. 이상을 향해 나가는 우리의 과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상황과 나의 현실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바라보며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