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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09 율리우스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
말씀연구_신약2014. 12. 9. 10:27

"율리우스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 제가 이 엄청난 사람이 어둠의 세계에 묻혀있는 것을 부활시킨 사람이에요. 예. 이 사람이 수학자, 그래서 이 사람이 쓴 「수학」이라는 책은 지금도 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전. 그리고 이 사람은 천문학자. 그래서 이 사람이 쓴 천문학 책은 천문학자들에게 여전히 고전. 오리지널 텍스트가 되는데. 이 분이 348년 이 때. 교회사적으로는 이 때가 어디에서 어디 사이에 해당하죠? 기독교 공인과 기독교 국교 그 사이에 있어요. 이사람의 국적은 로마. 신분은 원로원, 로마 국회의원. 수학자. 천문학자. 종교 행정관. 이거를 지냈던 사람이예요. 이 사람이 무슨 책을 썼냐면. 「이방 종교의 모순들」이라는 책을 쓰고, 로마의 원로원이면서 종교 담당 행정관인 본인이 병사들을 시켜서 망치를 들고 로마 시내에 있는 다이아나,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이런 신들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다 깨라고 명령을 내려서,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 로마로 놀러 가면 코 없는 신상들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그분이 이분이예요. 아무도 몰라. 이 거. 우리 교수님하고 나하고 내 논문을 읽을 사람만 아는데."


율리우스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Julius Firmicus Maternus)는 이교의 고전 교육을 받아 그리스어에 능했던 라틴어 작가이며, 점성가이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후임자의 치세기에 살았다. 세 가지 분야에 걸친 그의 경력은 그를 공공 변호인이자 점성술사로 그리고 마침내는 그리스도교인 논객으로 만들었다.[1]

생애과 업적[편집]

《이교의 오류에 대하여(De errore profanarum religionum)》의 유일한 잔존 원고의 마침글은 그의 이름이 율리우스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 V C(비르 클라리스시무스)이며, 뒤의 칭호로 그가 원로원 계층의 일원임을 나타낸다. 그는 로마의 점성술에 대한 잔존하는 가장 광범위한 문헌 《수학에 대한 여덟 서(Matheseos libri octo)》(334~37년 작성)[2]의 저자이기도 하며, 그 문헌은 그를 시칠리아의 루니오르이자 시쿨루스라고도 한다.[3] 달의 충돌구 피르미쿠스는 그를 기념하여 이름지어졌다.

마테세오소(Matheseoso)》(수학)은 캄파니아의 총독 롤리아누스 마보르티우스에게 헌정되었고, 그 분야에 대한 그의 지식은 피르미쿠스가 그것의 편람을 저술하는 동안 그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도록 하였다. 그 편람은 12세기에 아랍어 문헌들이 출간되기 이전에 서양에 전파되었던 "과학적" 점성술에 대한 가장 마지막의 광범위한 편람들 가운데 하나이다.[4][5] 4세기 중엽의 어린 시절에 점성술을 접했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6] 부분적으로는 행성을 신격화 하는 있는 점성가들의 견해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직업이 다른 쌍둥이와 같은 합리적 동기에 기초하여 그 과목의 불경함에 대하여 비난을 퍼부었다.[7] 1501년에, 알두스 마누티우스에 의해 그것의 신플라톤주의의 점성술 저서가 최초로 출판되었고, 이후로 종종 재출판되어오고 있다.

346년 경에, 그는 《데 에로레 프로파나룸 렐리지오눔(De errore profanarum religionum)》(이교의 오류에 대하여)를 편찬하였으며, 그것은 콘스탄티누스 2세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스에게 헌정되었고,[8] 현존한다. 그는 이교의 신앙과 관행을 경멸의 대상으로 내세우며, 하느님께 보상을 받게 될 신성한 의무로써 황제에게 옛 종교들을 근절시키도록 간청한다.[9] 첫 부분(제1~17장)에서, 그는 동양의 비교들에 있는 거짓 우상들을 격렬히 비난하며, 두 번째 부분(제18~29장)에서, 동성애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의도와 연관된 신비적 종교들의 여러 의식과 형식을 비판한다.[10]

19세기 동안 《이교의 오류에 대하여》의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마테세오소》라고 불리는) 피르미쿠스의 점성술에 대한 저서와의 현저한 대조를 지적했는데, 그것은 두 저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작가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1897년에) 클리퍼드 허셜 무어는 에두아르트 뷜플린 지도 하의 한 학위 논문에서, 기이한 어휘 선택과 구문론을 들어 그 두 저서는 단일 저자의 것임이 확실하다고 했다.[11] 테오도어 몸젠은 《마테시스(Mathesis)》가 이전에 알려진 연도인 354년이 아니라 336년에 편찬되었고, 따라서, 그것이 《이교의 오류에 대하여》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음을 밝혔다.[12] 점성술과 초기 기독교와의 비양립성을 인식한 현대의 독자들은 그것이 피르미쿠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이전에 저술되었다고 주장한다.[13]

그것들 중에 기독교에 관한 저서는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에서부터 현재 바티칸 도서관에서 단일본으로 보존되어오고 있다. 그것은 1562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처음 출판 되었고, 미누키우스 펠릭스와 키프리아누스 혹은 아노비우스와의 논쟁적 저서들이 첨부되어 그리고 그것들과 별개로도 여러 번에 걸쳐서 재출판되어오고 있다.[14]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