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5.12.22 룻2:14-23
  2. 2014.02.09 마 9:35-10:4
  3. 2014.01.30 마6:19-34
  4. 2011.09.15 마25:47-56 오늘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기회이다. 관계의 허물어짐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자 #생명의삶
  5. 2011.09.07 마24:29-35 인자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시는 그 종말을 생각하며 오늘도 믿음 안에서 깨어 살아가자. 나의 시간과 삶을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자. #생명의삶
  6. 2011.08.18 마19:1-12 독신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의 삶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삶만큼 복되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보지 말 일이다. #생명의삶
  7. 2011.08.13 마16:21-28 '이 때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를 보게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미래와 존재감보다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자. #생명의삶
  8. 2011.08.11 마16:1-12 표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하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교훈을 조심하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르침, 나의 욕망을 채우며 나의 명예를 세우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2. 17:24

먹방은 함께

룻2:14-23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14절)

자신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허락했던 보아스는 식사시간이 되자 룻에게 함께 먹을 것을 권한다. 먹을 것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와서 함께 먹자고 초대한다. 이방인, 모압사람, 여성, 과부, 낯선 사람 등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식탁에 초청한다. 함께 먹는다. 이것이 헤세드이다.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헤세드의 공동체로서 함께 먹는다. 함께 말씀을 먹고, 음식을 먹는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함께 먹는다. 냉장고를 열어보자. 먹방은 함께 찍자.


보리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23절)

보아스는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줍도록 계속해서 은혜를 베푼다. 하루,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은혜는 아구를 채우고도 넘친다.특히 이삭줍기는 레위기,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씀이다.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보아스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삶으로 드러낸다. 어두움 가운데 더욱 밝히 드러나는 빛과 같다. 인심 박한 이 어두운 시대에 넉넉한 은혜로 빛을 비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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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세우실 때 이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실 때 제자들과 함께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가기를 원하셨다. 일단 여기에서 큰 단절을 느낀다. 나는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권능은 어쩔 것인가? 나는 진짜 제자가 아닌건가? 아니면 이런 권능은 이 시대에는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던져보면서 소원하기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제자만이 가지는 표지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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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오늘 24-34절에는 염려라는 단어가 총 6번 등장한다. 염려하지 말라가 주요내용으로 새삼 다가왔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도 염려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염려는 다름아닌 이 땅의 것을 추구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믿음에 있어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을 염려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부르심이라 느끼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했는데, 또다른 차원의 염려의 모습이다. 염려하지 말자. 대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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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배신과 버림을 당하셨다. 유다로부터는 배신의 입맞춤을 당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3년의 가르침과 삶이 다 허물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한 예수님의 수고가 다 헛된 것 같아 보이는 시점이다. 그러나 이들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부활과 다시 찾아가서 회복시키심을 통해 이들을 복음의 사도로 하나님 나라에 사용하실 것이다.
 56절에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은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게 함이라고 하셨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셨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기회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씀대로 살아서 말씀을 이루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배신과 버림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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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과 세상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인자의 오심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 날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겠다 하셨다. 그리고 택하신 자들을 모두 모으겠다고 하셨다. 다니엘서를 생각해보면 인자가 오는 것은 이 땅의 나라와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를 세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셨으나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마지막 때이다.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자. 특별히 그 나라는 나의 인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기억하고 행하자.

무화과나무가 어떠함을 통해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여러 징조를 통해 종말이 가까워옴을 알라 하셨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이 이 일이 다 이루어진다 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종말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말이 가까웠으니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땅 사고, 집 사고, 자녀교육 시키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노후대책 마련하고 하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종말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 가운데 깨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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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혼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본래의 의미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부모를 떠나서 합하여 한 몸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단 음행의 이유로는 이혼이 허락될 수 있다는 여지가 남아있다. 점점 이혼률이 높아지고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요즘.. 결혼의 본래적 의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좀 더 연구와 배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말한다. 결혼하는 삶도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이지만, 독신도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이다. 독신자들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보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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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약속을 주신 이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내하시고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이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계획과 안정감과 미래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목회를 하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기보다 또 이 안에서 나의 계획, 안정감,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처음에는 목숨을 잃는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목숨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미래, 나의 감정,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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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미 12장에서 한번 나왔다. 사실 예수님은 15장에서 이미 충분히 표적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라 무력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나 또한 표적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가르침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런 가르침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 말이다. 나 역시 나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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