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예배를 심어라

암5:18-27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2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자신들이 구원받고 대적들이 심판받는 날로 당연시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당황스러운 날이다. 자신들의 죄가 심판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심판이 사랑과 공의를 잃어버린 예배 때문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끌려가게 하신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위험성을 지적하신다. 그러다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황당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꼭 같다. 하나님을, 구원을, 심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구원과 은혜가 자동적으로 주어지리라, 심판이 응당 피해가리라 여기지 말자. 그러다가 황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황당한 심판이 주어지는 이유는 제사와 삶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제사드리고 제물을 드리고 십일조를 드려도, 그 삶에 공의와 정의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역겨워하신다. 무너진 삶, 공의와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말씀에 적용하면 이렇다. 일상 속에 예배를 심어라.

이것은 묵상에도 적용된다. 묵상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실 것이다. 일상 속에 묵상을 심어야 한다. 말씀묵상으로 만족할 수 없다.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 말씀실천이 살 길이다. 그것이 능력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욥기2014. 8. 13. 23:36
욥기29:1-25
1-2 지난 날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기를 바라는 욥
3-6 부유한 삶을 살았던 욥
7-10 지역에서 존경을 받았던 욥
11-17 정의와 공의를 실천했던 욥
18-20 장수를 기대하고 삶에 활력이 가득했던 욥
21-25 존경을 받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욥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함께하심으러부터 나온다는 고백이다. 부유와 존경과 삶에 활력이 가득한 욥에 삶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의와 공의를 위한 실천이다. 특히 약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도울 뿐 아니라 악인과 싸우는 다소 공격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좀이다. 나는 과연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악과 맞서 싸우는가? 성격을 핑계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가? 뭔가 실천이 필요하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언하셨다. 특히 이들은 자기 자신만 망칠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그 심각성을 찾게 된다. 가르치는 자와 인도하는 입장에 있는 자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가르침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살펴야 한다.

 23절에서 십일조의 세세한 규정은 지키면서 '의와 인과 신'은 저버렸다고 책망을 당한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정의와 자비와 신의로 번역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율법도 행하고 그 정신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은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본질은 형식을 통해서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사이가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늘 하루 내가 하는 일들 가운데도 본질을 놓치고 형식만 남은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 나의 섬김과 사역 가운데 정의와 자비와 신의가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삶의 단상2011. 8. 14. 13:59
해아래 압박 있는 곳
주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 찬송가 460장 2절 중에서

주일예배 마지막 찬송.
이 땅의 압박 있는 곳에 주님의 정의가 살아나기를..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