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예배를 심어라

암5:18-27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2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자신들이 구원받고 대적들이 심판받는 날로 당연시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당황스러운 날이다. 자신들의 죄가 심판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심판이 사랑과 공의를 잃어버린 예배 때문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끌려가게 하신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위험성을 지적하신다. 그러다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황당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꼭 같다. 하나님을, 구원을, 심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구원과 은혜가 자동적으로 주어지리라, 심판이 응당 피해가리라 여기지 말자. 그러다가 황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황당한 심판이 주어지는 이유는 제사와 삶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제사드리고 제물을 드리고 십일조를 드려도, 그 삶에 공의와 정의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역겨워하신다. 무너진 삶, 공의와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말씀에 적용하면 이렇다. 일상 속에 예배를 심어라.

이것은 묵상에도 적용된다. 묵상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실 것이다. 일상 속에 묵상을 심어야 한다. 말씀묵상으로 만족할 수 없다.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 말씀실천이 살 길이다. 그것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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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스마엘의 후예

본문에서 드라마틱했던 아브라함의 생애는 끝이 난다.
그의 생애를 돌아볼 때 여러 실수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복의 통로로 그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스마엘의 후예들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은 지우고 싶은 과거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도 신실하심을 보이신다.
이 후손들을 통해서도 성경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하신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들을 이슬람교와 연결지어버리면 더이상 할 말은 없게 된다.

그러나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과거에도 하나님은 싹을 틔우시고 줄기를 이어가게 하신다.
이것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신다.

나도 몇 가지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비교적 최근의 일로는 중고등부 사역. 산상수훈 특강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깃들어있다.
이것을 통해서도 배우게 하시고 이것에도 싹을 틔우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실 것이다.

! 그동안 묵상을 하면서는 무언가 깨달음이 오면 그것을 생각하고 정리하기에 바빴는데 그렇게 하면 온전한 묵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선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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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2012. 1. 20. 13:46
묵상할 때 무언가 새롭고 인상적인 생각과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 한구절 붙들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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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2011. 9. 3. 06:34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한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커녕,
말씀을 읽고 묵상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형식적인 것 같고, 아무 느낌도 없고, 생각의 노름 같고..
그래도 계속 가야겠지..
이 몸부림이 있어야 말씀대로 사는 몸부림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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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예수님의 화 선언.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경건한 체 하지만 내면은 욕심과 죄로 가득한 이중성을 지적하신다. 이런 이중성을 버리고 내면의 거룩하지 못함을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내면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내면의 욕심과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묵상과 기도가 가장 좋은 훈련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과 같지 않게 자신들은 선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나 실상은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참 어리석고 미련하다 하나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신다면 나는 그분을 거역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가?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다면 어떤 일들을 감당하실까? 나 자신의 위치와 기득권과 안정감에 연연하지 않아야 주님이 하실 만한 일들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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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31-43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많은 것에 혹은 그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
이 세상과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멀어보이고 오히려 그 반대로 달려가는 것 같다.
겨자씨와 누룩 같은 하나님 나라를 기억하며 오늘 당장 보이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고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자.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겨자씨를 내 마음밭에 심고, 누룩을 내 가슴 속에 넣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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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2011. 7. 30. 19:10
매일매일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으나..

왠지 메세지 뽑아내는 훈련으로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

진정한 말씀묵상은 삶의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져야 제대로 된 묵상일 것이다.

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만지심을 간절히 기도하며 말씀 앞에 서야겠다.

말씀 앞에 더 머무르고, 더 듣고자 하며, 더 내 자신을 열어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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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식과 제도에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언제나 그 내용과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사의 형식에는 자비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나의 예배와 신앙생활과 목회활동에는 사람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담겨있는가? 그런 영성과 감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의미한 새벽기도 시간을 다시 살리는 일이 우선적이다.

2. 예수님은 모든 형식과 제도에 절대적 권위가 되신다. 그 예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살아계시지 않기에 그것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으나 묵상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조심스럽게 분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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