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1.09.21 마27:45-56 휘장의 찢어짐은 십자가의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좀더 은혜로운 예배가 가능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예배에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기를. #생명의삶
  2. 2011.09.20 마27:27-44 군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며 조롱하였다. 생각과 행동은 그렇지 않으면서. 우리도 믿는다면서 말과 삶이 다름으로 예수님을 조롱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생명의삶
  3. 2011.08.24 마21:1-11 선지자를 통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나귀를 타신 예수님. 오늘 하루 나의 삶도 말씀을 이루는 삶, 말씀을 성취하는 삶이 되기를.. #생명의삶
  4. 2011.08.20 마19:23-30 청부나 청빈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는 구원받는다. 오늘도 주님의 제자로써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자 #생명의삶
  5. 2011.08.13 마16:21-28 '이 때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를 보게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미래와 존재감보다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자. #생명의삶
  6. 2011.08.12 마16:13-20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오늘 하루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어떻게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주어진 일을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할 것이며, 맡겨진 성도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 섬겨야 할 것이다. #생명의삶
  7. 2011.08.11 마16:1-12 표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하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교훈을 조심하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르침, 나의 욕망을 채우며 나의 명예를 세우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8. 2011.07.31 마12:38-5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셨다. 그 이후에 바로 일어난 일은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이었다. 구약의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짓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분과 분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제한적이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좀더 은혜로운 예배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이다. 오늘 예배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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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다.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는 가운데 군병들에게 유대인의 왕 만세라는 조롱을 들었고, 십자가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통해 비웃음을 당하셨다. 실제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조롱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로만 예수님을 왕이요 구원자라고만 하고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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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먼저 제자들을 시켜서 나귀를 가져오게 하신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는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하셨다.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말씀을 성취하는 삶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도 말씀을 이루는 삶, 말씀을 성취하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특별히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기를 원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무리가 호산나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예수님을 잘 알지못하면서 호산나라고 외친 것이다. 호산나는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라고 알고 있는데 과연 어떤 의미로의 구원을 외쳤던 것일지.. 단지 군중의 열광에 다들 편승했던 것일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그분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열광과 환호가 아닌 묵묵한 십자가로의 순종만이 기억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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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청년이 돌아간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신다.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나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면 하나님 나라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물질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 터. 청부나 청빈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무엇을 얻겠느냐고 질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버린 것의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다. 제자로써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한 보상을 말씀하신다. 보상을 위해 버린다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원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말씀은 의미심장한 구절로써 지금 포기하고 헌신했을지라도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마지막까지 온전히 주님을 따르라는 경계의 말씀으로 들린다. 장로가 천국가서 짜장면 먹을 때 목사는 짜장면 배달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 하루도 주님의 제자로써 포기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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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약속을 주신 이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내하시고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이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계획과 안정감과 미래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목회를 하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기보다 또 이 안에서 나의 계획, 안정감,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처음에는 목숨을 잃는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목숨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미래, 나의 감정,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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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였는데 비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고백하였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베드로는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상태였지만 지금의 이 고백은 진정성이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번화하고 로마황제의 도시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도 이 고백은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겠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 삶을 드리고 그분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순교의 현장이 아니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내 삶을 드릴 수 있을까? 주어진 일에 주님께 하듯 섬기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마음 뿐이었던 전화심방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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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미 12장에서 한번 나왔다. 사실 예수님은 15장에서 이미 충분히 표적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라 무력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나 또한 표적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가르침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런 가르침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 말이다. 나 역시 나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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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은 표적에서 말미암지 않는다.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와 태도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인데 이것은 표적 중의 표적이다.
   물론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냥 허무한 죽음으로 보여졌겠지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표적 중의 표적이 나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멈치지 않고
   더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 나가기를 원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원하나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인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뭔가 하나님의 뜻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뭔가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어야 할까?
특별하고, 모험을 하고, 결단을 내리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며, 계속 이어가고,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나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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