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미 12장에서 한번 나왔다. 사실 예수님은 15장에서 이미 충분히 표적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라 무력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나 또한 표적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가르침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런 가르침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 말이다. 나 역시 나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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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은 표적에서 말미암지 않는다.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와 태도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인데 이것은 표적 중의 표적이다.
   물론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냥 허무한 죽음으로 보여졌겠지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표적 중의 표적이 나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멈치지 않고
   더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 나가기를 원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원하나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인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뭔가 하나님의 뜻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뭔가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어야 할까?
특별하고, 모험을 하고, 결단을 내리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며, 계속 이어가고,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나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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