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에 대한 몇가지 해명
-관계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중재를 말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됨의 심각성을 고려한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의 대상이 될 때의 우상숭배/오인된 전이를 거부하는 논리입니다(물론 심각한 문화신학에 대한 거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의 그리스도의 중재는 통상적인 기독교스러운 영적인 말, 분위기와 다른 차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하고만 교제하라든지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타자에 이를 때 그리스도를 통해 중심에 이른다 정도가 핵심일 것입니다. (앞의글)


본회퍼의 그리스도 중재론은 독일민족교회의 히틀러에 대한 충성서약과 그의 스승이었던 자유주의신학자들의 나찌에 대한 찬동에 반작용의 결과이다.

본회퍼는 '민족'이라는 이름의 뒷편에는 자연, 이성, 종교, 문화라고 하는 자유주의신학의 방법론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신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초기 바르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독일민족교회 혹은 독일제국교회에 반대하는 복음적인 고백교회의 비인가비밀신학교의 하나인 핑켈발데목회자양성소를 책임지면서 예비목회자들에 대한 훈련의 경험으로 나온 것이 성도의 공동생활이다

따라서 이 저서에서 일차적인 대상은 신학, 목회에 소명을 가지고 있는 '신학생'들임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하지만 이것이 소위 일반성도들에게 의미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방법론적인 전향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해명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본회퍼를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지 말아야 할것은 루터적인 전통이다
바르트가 본회퍼를 루터적인 암울함이 배어난다고 평한 것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스승들의 배신과 양심을 마비시키는 분리주의에 경도된 루터적인 잘못된 두 왕국론을 바라보면서 본회퍼는 '이 세상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민족이라는 이름의 우상에 무릎꿇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서 하나님에게 이르는 방법론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의 투사물에 불과하다.

본회퍼에게 있어 그것은 자연신학이었으며 우상숭배로 필연적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웃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다는 고백이요 모든 관계의 주인이 또한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후기의 이 세상성을 발견하고 나서도 연속되어지면서 독특한 선을 그리게 된다

본회퍼에게 있어 하나님의 초월은 '이 세상적인 초월', 삶의 한 복판에서의 현실이기에 실제 모든 세속적인 관계도 그리스도의 중재 가운데 있는 거룩한 영역이다

모든 관계에 그리스도의 중재는 '이 세상성'과 연결되어 루터적인 이원론을 철저하게 격파한다

모든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중재를 고민한다는 것은 발견된 성숙한 이 세상성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분위기나 말 , 색채를 벗어버리고 철저한 주되심 가운데로 들어가 그분의 주되심을 세속 가운데 모호하게 보이는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구체적인 통로인 제자는 이렇게 이 세상가운데 우상을 타파하며 종교를 거부하고 그 분만을 주로 고백하며 다른 것이 우상되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지 소위 종교적인 거룩한 양식들, 제단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않는다.

이 세상적인 초월을 발견한 제자는 성인된 세계에서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책임을 지닌 자로 행동한다

이런 제자는 현실의 실천 가운데로 과감히 뛰어드는 행동가이다
주님의 주되심이 훼손되는 모든 자리에서 그분을 따르는 철저한 제자도를 살기위해 싸우며 구체적인 현실의 행동을 감행하기에 자신을 모호하고 애매한 현실정치의 영역에 두는 용기를 지닌 자요 비난을 감수하는 자이다. 주님의 주되심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전선을 형성하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이다. 가치와 양심은 제자로서 따르는 행동하는 고백 가운데 있지 이론과 신학에 있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겉보기에 그는 거룩한 자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에게 불경한 자이나 루터가 말한대로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기도보다 죄인의 불평을 기뻐하신다.

이렇게 제자는 현실 가운데 전혀 거룩하지 않으나 철저한 신앙으로 사는 자로 은밀히 행동하는 모호하고 애매한 숨겨진 삶을 사는 자이다. 

제자는 고백하는 행동 가운데 자신의 이 세상됨을 철저하게 긍정하는 자이다

이렇게 겉모양이 아닌 영성을 추구한다면, 너와 나의 만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도의 공동생활은 배경이 된 경험이 신학생으로 제한된 이상적인 내용이지만 후기의 본회퍼의 사고의 궤적을 따르자면 주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자하는 모든 '성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 없이라는 이야기는 자신의 배를 숭배하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의존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딱딱한 것을 먹을 줄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는 종교의 영역의 하나님, 삶의 구석에서만 유효한 분리되고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그 분의 주됨을 고백하는 태도이다

지극히 이 세상적이라는 말은 복음이 인간의 중심을 가르는 참된 궁극적인 것임을 아는 것이다. 세속 가운데 그들의 언어로 충분히 그들과 공감할 수 있다

은밀한 제자는 그들의 말, 생활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의 주인되심을 거룩한 모양없이 충분히 공명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