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처치 논박(Against Mega Church)02-A: 메가처치 형성의 사회적 조건

 

by 신광은, 박삼종

 

메가 처치는 문화적 교회다. 문화적 교회라고 해서 문화가 꽃피는 교회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 문화를 교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교회라는 뜻이다. 교회가 수용한 세상 문화란 무엇인가? 메가 처치는 우선적으로 근대 문화(modern culture)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교회이다. 특히 메가 처치는 근대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적극적 수용을 통해서 탄생할 수 있었다. 아울러 메가 처치는 포스트모더니티 역시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메가 처치는 '카니발'이나 '바보제'와 같은 '축제로서의 예배 기능'을 적극 개발하고 또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메가 처치 현상은 사회문화적 조류와 흐름을 교회가 적극 수용함으로써 생겨난 교회다.

 

메가 처치가 문화적 교회요, 메가 처치 현상이 세속적인 조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 그것은 메가 처치 현상에 대한 통속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메가 처치를 가리켜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한 결과'요,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을 부으신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메가 처치는 성령님의 역사나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기 앞서 교회가 세상의 흐름과 세속적 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생겨나게 된 결과이다. 따라서 메가 처치는 태생적으로 세속적인 교회다.

 

1) 대중의 출현

그렇다면 교회가 받아 들인 세속적 흐름이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 번째는 '대중(mass)'의 출현이다. 오르테가 가제트에 의하면 대략 19세기 경에 갑작스럽게 대중이 출현했다고 한다. 1800년대까지 유럽 인구는 1억 8천만명을 넘은 적이 없다. 그런데 1800년부터 1차대전까지 유럽 인구는 갑작스럽게 4억 6천 만명으로 성장한다. 거의 3배나 증가한 셈이다. 전 세계 인구는 1800년까지 6억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0년 사이 세계 인구는 16억으로 성장하고, 다시 100년이 지나면서 60억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급속한 인구 증가가 만들어 낸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은 '양'과 '수'로 승부하는 거대한 무리들, 곧 '대중(mass)'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텅 빈 자리는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곳곳마다 사람들로 그득하다. 시각적인 거대한 무리, 몹(mob)이 온 세상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가득하고, 기차 역이나 오페라 홀, 식당, 백화점, 공원 등에 사람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마치 대접에 물이 넘치듯 모든 곳은 갑자기 대중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중의 위력, 곧 '숫자'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대중은 자신들의 무기인 '숫자'로 자신들의 생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820년대 파리에서 욕실 딸린 주택은 단 10채 밖에 안 되었지만 대중은 주장하기를, 모두가 이런 주택을 소유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소비하고, 소유하고,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막는 어떠한 제한이나 장벽도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生)의 제한(limitation)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나 대중은 이를 거부했다. 생의 제한은 급속하게 제거되었으며, 무한대의 소비, 소유, 향유의 욕망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의 권리 주장으로 말미암아 근대 세계의 '거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대중의 분출하는 욕망 덕분에 모든 것이 커졌다. 백화점, 식당, 극장, 역, 공원 등.. 이 모든 것은 '똑같이 누리는 권리'를 가진 대중들을 위해 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대중을 위해서 백화점도 커지고, 극장도 커졌으며, 상품은 대량생산되었고, 도시는 폭발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감히 대중의 요구를 내 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교회도 바로 이 대중을 받아들여, 커켰다. 이것이 메가처치다. 따라서 메가 처치는 대중 교회(mass church)다.

 

2) 도시화

두번째로 지적할 것은 도시화(urbanization)다. 과거에도 도시는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전혀 새로운 도시가 나타났다. 이것을 근대 도시라고 한다. 근대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주로 산업화와 함께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자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 팽창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이를 '도시 폭발(urban sprawl)'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도시와는 다르게 근대 도시는 성곽과 같이 도시의 크기를 제한하는 경계선이 없다. 도시는 무한히 확장가능한 공간이 되었다. 인구 1천만명 이상이 사는 초거대도시, 메트로폴리스가 출현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메트로폴리스끼리 결합되는 메가로폴리스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도시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계속해서 도시로 몰려오고 있다. 이것이 근대 도시의 특징이다.

 

근대 도시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도시가 사람들이 사는 일반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18세기까지 도시란 극히 예외적인 공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도시지역에 살았다. 1800년대 이전까지 전 세계의 도시 인구는 10%를 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19세기 말, 5만명 이상의 도시는 서울과 부산, 단 2곳 뿐이었으며, 대부분의 도시는 1만명을 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 세계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선진국을 비롯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 인구는 80%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와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어서 종내에 전 세계 모든 인구는 도시에만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미 오늘날 농촌은 자급 능력을 상실했으며, 식량 공장으로 도시에 편입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미 사람이 사는 모든 곳은 도시로 뒤덮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가 처치는 바로 이 근대 도시에 세워진 교회다. 도시가 없다면 메가 처치도 없다. 메가 처치 현상은 근대 도시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메가 처치는 근대 도시의 여러 특성들을 적극 수용했다. 그래서 메가 처치는 완벽하게 도시에 적응된 교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메가 처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다. 모든 메가 처치는 자기만의 작은 도시를 꿈꾼다. 메가 처치의 모든 조직, 구조, 활동은 도시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메가 처치는 도시성(cityness)으로 충만하다. 도회적인 흥분, 자극, 세련미, 추상성 등이 메가 처치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초대교회도 도시에 있었으나 그들은 철저히 반도시적이었다. 어쨌든 메가 처치는 도시성을 적극 수용한 도시 교회(city church)다.

 

3) 테크놀로지

세 번째로 주목할 것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다. 테크놀로지가 없다면 메가 처치도 없다. 메가 처치는 성장의 한계(growth limitation)가 없는 교회인데, 이는 성장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하는 가공할 만한 테크놀로지의 발달 덕분이다. 가령 교통의 발전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고, 이동의 자유가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서울 모 교회 장로님은 제주도에 사시는데 매 주 비행기로 예배에 출석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메가 처치 교인들도 교회버스, 승용차,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교회가 어느 곳에 있든지 자유롭게 이동하여 교회에 출석할 수 있다. 메가 처치는 마음껏 이동의 자유를 즐기는 점퍼(jumper)들의 교회다.

 

목사의 설교를 어느 곳으로나 전송할 수 있는 전자 테크놀로지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목사는 더 이상 멀리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설교를 듣게 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마이크를 쓰면 되고, 소리가 작으면 볼륨만 조금 키우면 된다. 너무 멀어져서 목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TV화면을 통해서 목사의 얼굴을 소리와 함께 전송하면 된다. 메가 처치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초대형 스크린은 목사의 얼굴을 얼마든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수 만명이 운집하는 돔형 실내 체육관에서도 천정에 매달린 4면 대형 스크린으로 얼마든지 목사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전자 테크놀로지는 메가 처치를 본당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메가 처치는 본당을 넘어선 교회다. 부속실로 전자 신호를 송출하여 본당 밖에서도 얼마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위성 송출을 통해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집에서 편안히 클릭 한 번으로 인터넷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전자결제 계좌로 헌금을 송금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메가 처치의 외곽 경계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메가 처치는 규모 때문에 불가피하게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한다. 규모가 작으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지만 규모가 커질 수록 테크놀로지 의존도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메가 처치는 테크놀로지 의존적인 교회다. 부속실에서 TV화면으로 예배를 보는데, 갑자기 음향시스템이 문제가 생겨서 소리는 안 들리고, 그림만 보이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런 경우 예배는 엉망이 되고 제대로 드려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메가 처치가 얼마나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이다. 그러니 메가 처치는 실상 테크노 처치(techno church)인 셈이다.

 

테크놀로지란 단순히 기계장치나 장비가 아니다. 테크놀로지란 자크 엘룰(Jacques Ellul)에 의하면 '목표하는 바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하는 방법들의 총화'다. 이런 점에서 테크놀로지는 정신의 문제요, 태도의 문제며, 나아가 그 자체가 하나의 영성(spirituality)이다. 메가 처치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전부 테크놀로지다. 행정기술, 조직기술, 경영기술 등 무진장한 테크놀로지가 교회를 유지, 관리, 성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선전(propaganda) 테크놀로지다. 세속적인 광고 기법, 심리학적 발견, 통계조사 방법 등을 도입한 설교, 교육, 예배는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개가다. 테크놀로지를 소유한 메가 처치는 마음 먹은 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울거나 웃게 할 수 있다. 초단위, 분단위로 계획된 큐시트로 콘트롤 되는 메가 처치의 예배는 원하는 시점에, 목표하는 만큼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시점에 78%의 청중을 울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이라고 착각한다. 메가 처치 안에는 테크놀로지의 영이 운행하고 있다. 참으로 메가 처치는 테크노 처치다.

 

4) 시장 경제의 출현

메가 처치의 출현이 가능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자본주의가 출현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18-19세기에 서양에서 출현한 매우 특이한 경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의 여러 특징이 있겠지만 본 논의와 연관해서는 자본주의가 시장 경제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시장 경제의 원리는 단순하다. 판매자가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면 소비자가 시장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 이것이 시장 경제의 원리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새로운 원리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고, 사고 하는 시장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 출현한 시장(market)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시장이다. 

 

시장 경제란 바로 이 자본과 시장의 자율성을 신뢰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과거의 자본과 시장은 독립적일 수가 없었다. 과거 시장의 질서는 왕이나 국가와 같은 수없이 많은 외부 세력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간섭과 제재를 받아왔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자본과 시장은 전적으로 자율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시장의 질서는 왕이나 국가가 아니라 시장 자체가 스스로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어졌다. 시장에 맡겨 두면 시장이 알아서 질서를 세우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시장에는 여러 판매자가 물건을 내다 팔고, 또 여러 소비자가 물건을 사려고 할 것인데, 이들의 판매 경쟁과 소비 경쟁이 저절로 합리적인 가격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방임해 둔다면 시장은 판매와 소비, 공급과 수요가 맞물려서 알아서 잘 굴러갈 것이라는 믿음, 더 나아가 이것이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개입한 것이라는 믿음이 19세기에 출현한 시장의 특징이다. 이 시장 경제의 원리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중요한 원리다.

 

놀랍게도 메가 처치는 이 시장의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메가 처치는 시장 상황(market situation)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 시장 상황이 도래했다. 오늘날 교회는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판매하도록, 그리고 그 신앙을 구매하도록 설득당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여러 판매자들이 상품을 시장에 내다 놓으면, 소비자들이 쇼윈도우 안의 상품을 원하는 가격에 구매하듯이, 교회도 똑같은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판매하고 또 구매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이 채널 저 채널 재빨리 이동하는 채널 하퍼(channel hopper)처럼 손쉽게 기독교 시장에서 구매 상품인 교회를 옮기는 처치 하퍼(church hopper)족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과거에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회가 신자를 선택했지, 신자가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는 시장에 나와 있는 여러 교회들 중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메가 처치는 시장에서 판매 경쟁에 성공한 교회며, 소형 교회는 판매 실적이 부진한 교회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가 크든 작든 모든 교회는 종교 시장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유경쟁 시장의 원리를 수용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결국 동일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여 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모든 교회는 마켓 처치(market church)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