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작가 미우라 아야코 남편 미쓰요의 일기
 우리 부부 만남에서 이별까지 40년 세월의 기록
하루 만에 생각해낸 장편소설 줄거리에 ‘빙점’이라는 제목 붙여

63년 아야코는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그해 정월 초하루, 아야코의 친정으로 신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우리는 아사히 신문에서 1천만엔이라는 상금이 걸린 소설 공모 소식을 보았다.

아야코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일찍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62년 월간지 <주부의 벗> 1월호에 ‘태양은 다시 지지 않는다’라는 수기가 당선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하야시다 리츠코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아사히 신문 공고를 본 다음날, 아야코는 하루 만에 완성한 줄거리를 다음날 내게 들려주며 써도 좋겠냐고 물었다. 그때 아야코는 라스트신을 먼저 생각하고 주인공 요코의 유서를 쓰고 있었는데, 그 유서에 “나의 마음은 얼어버렸다”라고 쓰여 있어서 내가 제목을 ‘빙점’이라고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근사한 제목이라며 좋아했다.

잡화점을 그만둘 수 없었던 아야코는 가게문을 닫은 후 저녁 10시부터 새벽 1~2 시까지 소설을 써 나갔다.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언 잉크에 만년필을 찔러가며 집필에 몰두했다. 마침내 63년 12월 31일 오전 2시, 드디어 소설 <빙점>이 완성되었다. 그때의 상황을 그녀는 <이 질그릇에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렇게 해서 12월31일 오전 2시, 결국 소설 <빙점>은 완성되었다. 복사는 2백장 정도, 마침내 빠뜨리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어쨌든 의지가 약한 사람의 전형인 내가 1천장 가까이 되는 장편을 완성한 것이다. (중략) 골판지 상자에 50장씩 철한 원고를 신중하게 쌓았다. 원고는 도중에 눈을 맞거나 비를 맞아도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싸서 넣었다. 명찰도 비닐로 씌웠다. 그 원고가 든 소포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하였고, 아침이 되어 남편 미우라가 아사히 신문사 본국까지 제출하러 가주었다. 12월 31일 소인이 있다면 유효할 것이다. 그 소인을 두번, 선명하게 받아 제출하고 왔다고 미우라는 내게 말했다.”

7월10일, 소설 <빙점>이 1위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와 아야코는 잡화점을 정리하기로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아야코가 나와 상담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고작 나의 재능을 가지고 상담을? 말이 안 된다. 소설 <천북원야>의 주인공 다가노의 딸인 야에에게 정이 들어, 야에만은 살리자고 그렇게 부탁했지만, 아야코는 야에를 허무하게 바다에 빠뜨려버렸다. 그녀의 소설은 어떻게 전개될지 나로서는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야코의 원고 청탁이 늘어나면서 나는 회사를 퇴직했다. 아내를 돕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아야코는 <빙점> 한권을 출판했을 뿐이었다. <양치는 언덕>의 출판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해 <신도의 벗>이라는 일본 기독교단체 출판국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시오가리 고개>를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내를 돕기 위해 남자가 오랜 세월 해오던 일을 그만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선 남편이 밥을 짓든, 차를 끓이든, 서로가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야코는 소설을 쓰게 되고, 강연에 초청받게 되었어도 건방진 기색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녀는 결혼 36년 동안 나를 대하는 자세가 눈물겹도록 일관되게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TV를 간절히 원한 그녀에게 “필요없다”고 미루다가 10년이나 지나서야 사줄 만큼 나밖에 몰랐던 것은 내쪽이었다. 그 사이 <빙점> <양치는 언덕> 등 그녀의 소설이 TV 드라마로 방영되었지만 아야코는 친정집에 가서 봐야 했다.

아내의 집필 돕기 위해 직장 그만두고 구술 필기에 매달려

소설 <시오가리 고개>의 연재를 시작하고 10개월이 지났을 때, 아야코는 내게 말하는 대로 원고를 써주지 않겠냐고 했다. 66년부터 아야코와 나는 구술 필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70여권의 작품이 대부분 구술 필기로 세상에 나왔다. 1권당 평균 3백 페이지로 본다면, 원고지 2만장은 나의 펜으로 썼다는 계산이 된다.

언젠가 “문학작품은 문자를 한자 한자 돌에 새기듯 쓰는 것이므로 구술 필기는 진정한 문학작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몸이 약한 아야코에게 구술은 정말로 적당한 수단이었다. 가끔 괴로웠던 것은 그녀가 구술하고 있는 도중에 졸음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야코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냉수로 얼굴을 씻곤 했다.

원고를 퇴고할 때도, 그녀의 지시에 따라 가필이나 삭제를 했다. 처음에 가필 수정은 그녀 스스로 연필을 움켜쥐고 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읽은 것을 들으면서 그녀가 “그 부분 이렇게 고쳐주세요” “다음 행은 전부 지우시고” 등등의 말로 원고를 다듬어갔다.   (계속)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