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작가 미우라 아야코 남편 미쓰요의 일기 |
우리 부부 만남에서 이별까지 40년 세월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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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는 취미가 적은 사람에 속한다. 그런 경향은 그녀의 소설에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야구에 대한 현대소설을 쓸 경우,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모르고 쓰게 되면 이야기가 이상해집니다.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편이 무난합니다”라는 게 그녀의 설명. 때문에 아야코의 소설에는 야구뿐 아니라 골프, 마작 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단 3분을 연설해도 메모를 하는 아야코는 모든 일을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 다도를 1년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센노리큐와 그 아내들>을 쓸 때, 다도의 대가 후지오 에이지로 선생은 “다도에 관해 전혀 틀린 부분이 없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녀의 흥미는 오로지 문학적인 세계에 있는 것 같다. 소학교 5학년 때 이미 노트 한권에 시대소설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특히 13년에 걸친 요양중에 많은 서적을 읽었던 그녀에게 취미의 전부는 독서처럼 보였다.
결혼생활 동안 아야코는 많이 아팠다. 67년 그녀의 목에 악성질환이 발병했지만 다행히 <빙점>을 완성할 무렵 뜸 치료법으로 회복되었다. 80년 아야코는 얼굴의 대상포진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그후로도 혈소판 감소증, 만성 편도선염, 심장발작 등 수많은 병마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82년 직장암 수술에 이어 91년에는 난치병으로 불리는 파킨슨병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아야코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복조차 입을 수 없었다. 혼자 눕거나 화장실에 가는 일도 그녀 혼자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병에 걸렸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숲처럼 조용했다. 짜증 한번 내는 일 없었다. 성질 급한 나에게는 그녀의 모습은 커다란 훈련이 되었다.
우리의 결혼식 축사는 “결혼생활은 즐거운 것뿐만 아니라 괴로운 일도 있지만 둘이서 협력해 나갈 때 극복할 수 있다”였다. 내가 아야코에게 협력하는 것은 극히 적지만, 남은 인생을 더 많이 그녀에게 협력해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그녀로 인해 좋은 것들을 실로 많이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야코와 결혼한 것은 내 인생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미우라 아야코 연보
1922년 4월25일. 훗다 테츠지 키사의 다섯째로 출생.
1946년 3월(24세) 훗카이도 우타시나이 가무이 소학교 교사 사직. 6월 결핵으로 요양소 입소.
1955년 6월18일(33세) 요양소에 미우라 미쓰요 내방. 미우라 아야코와 첫 만남.
1959년(37세) 훗다 미쓰요와 결혼식.
1961년 12월 <주부의 벗>에 <태양은 다시지지 않고> 수기 당선.
1964년 7월(42세) 아사히 신문 1천만엔 현상 소설에 <빙점> 당선.
1966년(44세) 일본 전역에 <빙점> 붐이 일어남. 12월 미쓰요, 아사히카와 영림국 퇴직후 아야코의 매니저로 전념.
1967년(45세) <시오가리 고개> 연재중 미쓰요가 구술 필기 시작.
1969년 1월(47세) 자전 <길은 여기에> 간행.
1974년 4월(52세) 자전 <돌멩이의 노래> 간행. 11월 미쓰요와 공저한 수필집 <태양은 언제나 구름 위에> 간행. TV 구입.
1977년 4월(55세) <해령> 취재 위해 미쓰요와 첫 해외여행.
1982년(60세) 5월 직장암으로 수술.
1992년 1월(70세) 난치병인 파킨슨병 판정.
1996년(74세) 11월 홋카이도 문화상 수상.
1999년(77세) 10월12일. 아사히카와 재활병원에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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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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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