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륀 신부의 '참된 자아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 특별 영성강연 지상중계
21세기 영성의 대가 안셀름 그륀(Anselm Gr??n, 성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의 '참된 자아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 특별 영성 강연이 2007년 11월 2~3일 이틀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렸다. 서울대교구 전진상 교육관 개관 50돌을 맞아 마련된 이번 강연은 ▲제1강의 :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9가지 로기스모이에 관한 가르침 ▲제2강의 : 사막 교부들이 생각과 정서를 다루는 길 ▲제3강의 : 두려움을 다루는 영적 길 ▲제4강의 : 우울증을 다루는 영적 길 ▲제5강의 : 치유의 길로서의 관상 ▲제6강의 :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 ▲제7강의 : 구원의 책인 성경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길이 보인다
감정과 욕망 잘 다스려야 참된 자아 찾고 내적 평화 누릴 수 있어
▨ 제1강의 :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9가지 로기스모이에 관한 가르침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345~399년)는 수도자로서 상당한 학식을 겸비한 영적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유혹과 욕망에 시달리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감정과 욕망에 대한 전문가가 됐다. 그는 사람의 아홉 가지 욕망을 '9가지 로기스모이에 관한 가르침'으로 설명한다.
에바그리우스는 인간의 욕망을 본능적ㆍ감성적ㆍ정신적 욕구로 분류했다. 본능적 욕구에는 식욕, 성욕, 물욕의 본능이 있다. 식욕은 삶을 즐기게 하며 성욕은 삶을 생기가 넘치도록, 물욕은 우리 삶을 안전하게 한다. 그러나 본능에 중독되면 식욕은 탐식이 되고 성욕은 방탕, 물욕은 소유욕으로 변한다. 본능에는 두려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식욕은 '굶지는 않을까', 성욕은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나', 물욕은 '가난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한다.
감성적 욕구에는 슬픔, 분노, 게으름(아케디아, Akedia)의 감정이 존재한다. 슬픔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슬픔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비애와는 다르다. 분노는 내적 분열에 이르게 하고 세상에 대해 도전하게 한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내면의 공격성이 파괴적인 힘으로 분출된다. 아케디아는 흥미가 없는 상태로 가장 위험한 감정이다. 아케디아는 순간에 존재하는 능력의 결핍을 의미한다. 본능적 욕구는 중독되느냐, 자유롭게 되느냐가 관건이지만 감성적 욕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과제다.
영적 욕구는 명예욕과 시기심, 교만이 존재한다. 명예욕을 추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로만 살아간다. 이들은 칭찬받고 이해받길 바란다. 시기심은 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한다. 시기심에는 누구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교만은 자신의 진면목 보기를 거부하게 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이상적 표상만을 가지고 있다.
이 9가지 욕망에 대한 가르침은 영적인 길로 향하게 하는 도전이다. 궁극적으로 이 가르침의 목표는 하느님과 일치에 있다. 하느님과 일치를 위해선 삶에서 이 9가지 욕망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잘 다스려나가야 한다.
▨ 제2강의 : 사막 교부들의 생각과 정서들을 다루는 길, 생각과 느낌들의 대화
초기 수도자들은 이 욕구들을 다루는 5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는 안티르헤티콘(antirrheticon) 방법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저서 「안티르헤티콘」에는 유혹의 말을 물리칠 수 있는 성경 구절이 기록돼 있다. 이 방법의 첫 걸음은 부정적인 생각을 인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 걸음은 치유의 성경 말씀을 찾아 내면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두 번째 방법은 생각과 대화하는 것이다. 모든 생각과 욕구들이 찾아오면 억압할 것이 아니라 허락해 삶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내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욕구와 친밀하게 지내면 그것들이 지닌 긍정적 힘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가 있는 곳에 자신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보물은 참된 자아에 대한 표상이다. 성욕이 문제라면 스스로 생명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야 참된 자아를 찾고 내적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비동질화다. 로베르토 아사지올리가 제시한 개념이다. 내 짜증을 스스로 관찰할 수 있다면 내면은 짜증으로부터 물들지 않은 상태다. 물들지 않은 곳은 하느님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머리와 가슴은 감정에 반응하지만 내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곳에는 감정의 욕망이 힘쓸 수 없다.
네 번째는 싸울 것인가 평화를 맺을 것인가다. 에바그리우스는 감정과 싸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다뤄 그 안에 있는 힘을 영적 삶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과 대항해 싸워 억압하면 결국 욕망에 의해 지배된다.
다섯 번째는 집 안에 머물기다. 에바그리우스는 방 안에 홀로 머물 것을 제안했다. 방에 머물면서 유혹을 제대로 바라보고 유혹 안에 있는 깊은 동기를 파악한다. 그러면서 유혹들이 자신에게 남겨놓은 상처를 발견한다. 유혹과 상처를 하느님의 빛에 드러내 놓는다.
수도자들은 욕망을 극복하는 여러 방법을 개발했다. 공통적인 것은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욕망이 없다면 수도자들의 삶은 아무런 힘이 없다. 영적 길의 중요한 부분은 욕망을 잘 다스리는 것과 같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한 부분이다. 감정과 욕망들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자 한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면목을 만나,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신의 모습을 만날 것이다.
두려움과 우울증, 영성 되찾는 첫 걸음
자기 과신 완벽 추구하는 생활에서 비롯
스스로 자기 한계 인정할 때 하느님 만나
▨제3강의 : 두려움을 다루는 영적 길
두려움을 다루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피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께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두려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둘째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은 없애려고 할수록 더 강해진다. 두려움은 인간이 지닌 한계를 보여주고 하느님께서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두려움 없는 삶은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그렇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한다. 이들은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것을 볼 수 없도록 벽을 쌓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두려움은 삶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하면 나를 우습게 볼 것이다'는 생각이다. 내면세계는 하느님께서 만드셨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어둠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사랑의 빛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추신다. 두려움은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하는지, 하느님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지를 알게 한다.
마음 깊은 곳에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갑옷을 만들어 아무도 상처를 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갑옷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내적 공간에는 어느 누구도 상처를 주는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혼자 내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 중에는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살면서 배우자나 친구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에게 매달려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수많은 참새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다. 하느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지켜주신다.
두려움을 치유하는 두 가지 심리치료 방법이 있다. 먼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를 심화시키면 혼자 내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면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믿음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을 생각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손에 맡겨진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하느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도 언제나 하느님 품 안에 있다.
▨제4강의 : 우울증을 다루는 영적 길
우울증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멀어지는 중요한 원인으로, 성취와 성공만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해 반작용으로 등장한다. 우울증은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표상에 있어 하나의 도전이다. 우울증을 대면하면 영혼의 깊은 바닥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마르 1,40 참조).
우울 증세가 있는 사람은 혼자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를 당할까봐 두려움을 지닌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가족이나 친구들이 항상 자신을 인정하고 돌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죄의식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기를 거부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마르 2,1-12참조).
우울한 사람들은 사물의 외적 모습은 보지만 내면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우울 증세가 심해지면 성경도 읽지 못한다. 이들은 벌하고 심판하는 구절만 눈여겨 본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경고의 말씀을 다르게 이해한다. 그래서 오직 부정적이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인지한다(마르 8, 22-26).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첫 단계는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되,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스스로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다던지 대화를 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우울증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물어봐야 한다. 우울증은 자신이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네 번째 단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울증은 스스로 완벽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생긴다. 중세시대에는 우울함을 창조적 활동을 위한 하나의 샘으로 봤다. 우울증을 잘 견뎌내면 창조적 작업을 하는 데 에너지가 된다. 하느님께 나가는 길은 우울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울증에 내재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성경은 영혼을 치유하는 거룩한 '약'
관상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 통해 치유 가능
자신의 삶이 활기에 넘쳐야 영적 생기 회복
▨제5강 : 치유의 길로서의 관상
수도자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345~399년)는 참된 치유는 관상 속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가능하다고 봤다. 관상의 본질은 기도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기도하는 존재며, 기도는 인간의 본성을 초월한다.
관상하는 동안에는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관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불편한 생각과 싸우지 말고 구름처럼 지나가도록 둬야 한다. 파도가 이는 바닷속이 고요하듯 관상하는 내면은 고요하다. 인간은 모두 내면에 거룩한 성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하느님이 존재한다. 관상을 통해 내면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질병이나 혼란스러운 생각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관상은 보이는 사물 뒤에 있는 하느님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 뒤에 하느님이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제6강: 영적 지도 그리고 치료적 동반
영적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내어 드리고 변화시켜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영적 지도의 중요한 테마는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생각과 표상은 신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완벽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느님도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늘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해 강론하는 신부가 있다. 신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신부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표상을 하느님께 주입시켰다. 본인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내적으론 하느님이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신자들은 벌 주는 하느님에 대한 강론을 듣는 것을 종종 힘들어 한다. 스스로를 벌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불확실한 하느님의 표상에 대해 듣지만 스스로 자비롭고 평화를 느끼는 사람은 같은 강론을 듣더라도 다르게 생각한다. 하느님에 대한 표상은 자신에 대한 표상과 연결돼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신부가 있다. 그에게 불면증을 어떻게 대하는지 물었다. 신부는 스스로 통제하려 한다고 했다. 이 신부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강박강념이 있었다. 중요한 점은 불면증으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다. 불면증에 대항해 싸우기 보다 하느님이 불면증을 통해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하느님은 불면증을 통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을 병들게 하는 엄격한 하느님의 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기도할 때 도대체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한다. 나는 묻는다. 기도할 때 자신을 느끼느냐고. 자신을 느낄 수 없다면 하느님도 느낄 수 없다. 자신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내어 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과의 관계는 시작된다.
가끔 생명력이 고갈된 수도자나 성직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기도 안에서 생명력이 충만한 하느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불편하게 한 부모님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영적 활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어린 시절 어떤 상황에서 즐거웠고 무엇을 가지고 몇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는지 회상해보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하느님과 일치한 체험을 했는지를 기억해, 그 체험을 영성에 도입하는 것이다. 삶이 활기에 넘쳐야 영적 생기도 회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치유받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한 유다인 시인은 성경 구절을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또 적합한 책을 적당한 때에 읽는 행위는 자살을 시도하는 많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책이 치유를 위한 것이라면, 성경은 영혼을 치유하는 약이다.
성경은 단순히 좋은 책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거룩한 책이다. 거룩한 말씀을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면 그 말씀은 우리를 치유한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성경에 비춰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경 구절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럴 경우 읽기 쉬운 소설 책을 권한다. 이러한 책을 읽는 것은 성경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읽는다는 것은 영적인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읽는 것을 통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체험하는지를 알게 된다. 책에 있는 내용을 공감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읽는 동안 만큼은 다른 사람의 체험 자체가 삶에 영향을 준다.
참된 영성은 우리를 활기차게 하고 온전히 살게 한다. 여러분도 영적 삶에서 자유롭고 사랑을 느끼며 내면의 넓은 세계를 체험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가톨릭인터뷰] ‘21세기 영성의 대가’ 안셀름 그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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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만나야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영성은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 나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 찾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 받아들여야” 이번 호 가톨릭인터뷰가 만난 인물은 안셀름 그륀 신부(Anselm Grun, 62, 독일 성 베네딕도 수도회)다. ‘21세기 영성의 대가’로 불리는 안셀름 그륀 신부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교구 전(全)·진(眞)·상(常) 교육관(관장 유혜심)이 개관 50주년을 맞아 초청한 자리다. 그는 2007년 11월 2~3일 연이틀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참된 자아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인간성과 영성의 통합’을 주제로 특별 영성 강연을 펼쳤다. 본지는 11월 3일 영성 강연에 앞서 안셀름 그륀 신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 ‘영성’이란 영적인 힘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그 분의 말씀이 내 안에서 들리게 됩니다. ▲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스스로 ‘영성’이 부족하다고들 합니다.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외부와의 관계만을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영성을 회복하는 길은 내가 나 자신의 삶에서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입니다. 아울러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진리를 직시하고 이를 지키려 할 때 영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영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제 때 식사하기 등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내가 나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바깥으로 활동하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만 선호하지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 때, 하느님도 알 수 있습니다. ▲ 급속한 산업화 사회를 겪으며 현대인들이 두려움과 우울증 등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두려움과 우울증은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빠른 결과를 얻으려는 데서 발생한 부작용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에 대해 의학적 치료만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과 우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영혼이 옳은 길을 찾도록 하는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증상을 겪음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 치유를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세계와 자주 만나야 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능력’이라고 합니다. 혼자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하며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고 가장 소중한 자신을 만나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 신부님께서는 동양의 명상법인 불교의 ‘선(禪)묵상’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불교 ‘선 묵상’을 배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톨릭의 묵상은 불교의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선 묵상’은 3세기 가톨릭교회 수도자들이 도입한 것입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지금도 이 묵상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방법만 불교의 것을 빌려왔을 뿐 기도는 하느님께 드립니다. 타종교에 열린 마음을 갖고 대화할 수는 있지만, 종교를 뒤섞어서는 안됩니다. ▲ ‘선 묵상’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 동방교회 전통 중에는 ‘예수기도’란 것이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숨을 들이쉬면서 ‘예수님’, 숨을 내쉬면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반복하며 기도하는 방법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침묵 속에 잠기는 것입니다. ▲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신부님은 분단과 통일을 겪은 독일 국적을 갖고 계십니다. 남북한 관계 회복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 과거 분단되기 전 독일 국민 대부분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분단이 되면서 동독의 경우 국민의 80%가 신앙을 잃었습니다. 신앙을 잃으면서 내적으로 공허하게 됐고, 그 자리에 신나치주의나 극우주의 같은 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이 부분이 큰 문제가 됐습니다. 남북한도 통일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내적인 공황 상태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 시대를 맞는 한국인들은 그러한 북한 주민들을 이해하고, 대화하겠다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통일은 국민 개개인이 마음의 문을 열고 열린 자세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 한국은 내달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신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상이란 무엇입니까? -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과 일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일치한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 속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스스로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잘못을 범했을 때 스스로 힘들어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남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아울러 평화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 저마다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읽어내고 그것을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국민에 대한, 이 사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45년 독일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64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에 입회했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수많은 피정 및 영적 지도를 하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이를 통해 각종 영성 강좌와 심리학 강좌를 두루 섭렵했다. 1976년 첫 영성 책 ‘깨끗한 마음’이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200여 권이 출판돼 28개 국어로 나왔으며 총 1400만 부가 판매됐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동양의 명상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
▨ 안셀름 그륀 신부 약력
△1945년 독일 융커하우젠 출생
△1964년 독일 뮌스터슈바르짜흐 성 베네딕도 수도회 입회
△1965~1974년 성 오틸리엔 대학(철학), 로마 성 안셀모 대학(신학) 수학
△1991년~ 현재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제와 수도자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
△주요 저서 : 「아래로부터의 영성」 「행복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