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자 예수
“삶은 고독하도다.
아무도 서로 알지 못하고
저마다 혼자일세”
헤르만 헤세의 이 시구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의식을 표현한다. 첨단 정보 통신망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다. 만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마음을 열 데는 없다. 덩그런 집에서, 군중 속에서, 그들은 고독에 떤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바라는게 많았다. 강복을 청했고 병을 치유해 다라고 부탁했다. 복음서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예수님은 외로웠다. 틈틈이 홀로 고독에 잠기셨다.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고독이 필요했다. 고독 속에서 하늘 아버지와 단둘이 오붓하게 게셨다.
군중 속에서 예수님은 외로웠다. 요한 복음사가에 따르면: “예수 당신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께는 누가 어떤 사람에 대해 증언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그분은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요한 2, 24-25)
예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은 베드로는 그분이 조만간 고난을 당할 거라는 말씀을 하시자 불만을 토로한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매섭게 나무라셨다: “물러가거라, 사탄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 33). 예수님은 결국 제자들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수난의 길을 가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함께 깨어 있을 거라고 믿으셨지만 그들은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실망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자고 있습니까?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겠습니까?”(마르 14, 37). 예수님은 기도하며 하느님께 간절히 호소하셨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함께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혼자 고독을 견뎌 낼 수 있었다고 요한 복음사가는 전한다: “보시오, 그대들이 뿔뿔이 흩어져 가고 나를 홀로 버려 둘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이미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니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요한 16, 32). 아버지께서 함께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고독을 변모시켰다. 고독은 어느새 아버지와 하나 되는 일체감, 아버지 안에서 자신과 하나 되는 일체감으로 변했다.
예수님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할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내가 외로울 때, 그것이 위안이 된다. 나는 고독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고독은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절신한 체험이자 하느님과 하나 되는 행복한 체험이다. 외로움은 괴로운 것이다. 오해받고 ‘왕따’당한 느낌이다. 어려워지면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좌절했을 때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나보다 잘났다. 나는 위기에 방치되었다. 온갖 고독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그분이 곁에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 외롭지 않다. 그분과 함께라면 나의 고독을 수용하고 주시하고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은 언제 외롭습니까? 버림받은 적이 있습니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외로울 때는 어찌합니까? 고독을 잊으려 다른 데로 눈 돌립니까, 아니면 참고 견딥니까? 외로웠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고독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됩니까?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계사의 큰 족적을 남긴 다그 함마슐트도 예수님처럼 뼈저린 고독을 체험했지만 신앙으로 고독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기도하라, 그리하여 너의 고독을 시련으로 삼아 네가 평생 헌신할 수 있고 네 목슴을 바칠 만큼 큰일을 찾으라!” 여러분이 외로움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아마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안셀름 그륀 「50가지 예수 모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