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서울 동성중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안셀름 그륀 신부의 강연 2부
<건강한 인생의 기술 - 건강한 인생을 찾는 그리스 사상에 대한 루카복음의 해답>을 발췌해서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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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수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안셀름 그륀 신부(사진/한상봉) |
루카는 예수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여주었다. 마르코사가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를 백인대장의 말을 인용하여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루카는 예수를 ‘이 사람은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예수 탄생 전 400년 전, 플라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성에서 쫓겨나고 매질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 교부학자들은 루카가 그리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정의로운 마음은 아무리 악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른다’며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기까지 한다.
예수 안에 정의의 관점은 모든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 사랑과 미움 등 대립을 두고 두려워했다. 루카사가는 서로 반대되는 면을 보여준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예수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카에 따르면 사람은 훌륭한 존재지만 자기의 참된 물질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예수가 세상에 와야 했고 거기에서 신적 힘을 찾는다. 예수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람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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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신부(사진/한상봉) |
루카는 의사였다. 루카복음 전체는 치유하는 말씀이 들어있다. 예수는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 사랑의 본질에 따라 회복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의 이상이 있었다. 루카에 의해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는 나자렛 회당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병, 앞을 못보는 사람, 중풍 등을 고쳐주었다.
예수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일어나는 상처를 치유한다. 예수는 최초의 가정의사였다. 예수는 부모에게나 자녀에게 책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치료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일어나는 어려운 일을 해결했다.
예수는 잘되는, 성공하는 삶을 인도한다. 그리스철학은 이런 목적을 두고 있다. 바로 삶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는 삶을 위한 인도자라는 명칭을 썼다. 이것을 잘되는 삶을 위한 인도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잘되는 삶을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겠다.
첫 번째, 내적인 원수와 화해하라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비유를 인용할 수 있다.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협정을 청할 것이다”(루카14,31). 이것은 원수를 친구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서 원수란 질투, 불안, 너무 예민함을 말한다.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문제와 싸울 때 반대하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더욱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하나의 예로 공포를 들 수 있는데, 공포와 싸우지 않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공포가 나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혹시 공포는 내 삶에서 기본적으로 틀린 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포를 두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내가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이다. 공포가 생기는 목적은,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으로부터 나를 보는 것이다. 공포와 좋은 관계를 맺어 하느님께로 가게 된다.
두 번째, 죄의 관점이다.
우리는 너무 죄를 강조해 왔다. 죄부터 가르쳤다. 루카는 그렇지 않다. 좋은 사람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죄를 짓게 된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죄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부정한 종지기’를 예로 보여준다. 종지기는 채무자를 불러 그중 얼마를 탕감한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진 죄에 대해 모든 것을 내야하는 입장이 아니다. 하느님이 모두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죄를 의식하면서 남과의 관계도 의식해야한다. 내가 죄를 졌고 남도 죄를 졌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있고 나도 내 집에 들어갈 수가 있다. 양쪽에서 서로를 쳐다볼 수 있다.
현대 사람들은 죄에 대한 태도가 부족해 보인다. 독일의 유명한 한 사업가는, 매스콤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자살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사건을 생각하더라도, 한국에서도 치유가 부족한 것 같다.
예수 안에서 죄의 문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죄를 모른 체하거나 합리화시키는 게 아니라, 죄의 용서,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게 중요하다.
세 번째, 재물과 세상과의 관계다.
루카는 복음에서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뿐 아니라 상인들과 땅주인들에게 글을 썼다. 그들이 직업을 그만 두고 재물을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루카는 재물의 이용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➀재산을 나누어라. 재산을 나누어 연대를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➁재산이나 소유의 문제에서 내적으로 자유로워라. ➂세상의 재물을 다루는데 충실하라. 이 세상의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중심은 사람의 영혼이다. 재물에 대한 좋은 자세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살 때에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삶을 위한 결정이다.
그리스 신화에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가 있다. 때가 되면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결정해야 할 문제는 진복팔단에 나타난다. 루카복음에는 행복선언 네 가지와 불행에 관한 선언도 네 가지가 나온다. 삶과 예수를 따라야 하는 것을 결정할 때, 사람들이 삶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권한다. “오늘은 내가 삶을 결정한다.” “삶을 내가 선택한다”라고. 좋은 길을 가더라도 여러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루카는 말한다.
공자와 그리스 사람들, 그리고 예수에 따른 삶의 기술을 비교할 수 있으면 좋다. 같은 점을 알 수 있고, 그리스도교 사상과 반대되는 것도 찾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연결과 반대되는 점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 철학을 우선 인정하고 좋은 점을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풍부한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큰 어려움도 빛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는 사람의 가슴 속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달라지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역사와 전통에서 나오는 지혜와 성경의 지혜가 합해져서 참된 기쁨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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