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20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H. 카(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역사·과학 그리고 도덕을 구분하며 그 구분의 타당성과 한계를 논한다(<역사란 무엇인가?>, 길현모 역,  81~84쪽).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는 종교와 도덕을 수렴하기보다는 사회과학을 수렴하는 공적인 객관담론을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가 종교와 도덕 쟁점을 내포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으로서의 역사가 자연과학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는 역사학의 사회과학적 입지를 굳게 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카는 성경의 신학적 역사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총론에서는 학문 활동과 기독교신앙의 공존가능성을 인정하는듯 하면서도 각론에서는 기독교신학과 역사학의 공존가능성에 심각한 회의를 표한다. 가령, 그는 천문학자의 학문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한다고 믿는 신앙과 양립할 여지가 있으나 “자신의 백성을 도와주기 위하여 별과 유성의 궤도를 바꾸어버리는 변덕스런 신”(수 10장)을 믿는 것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진지한 역사가들이 신이 역사 전체의 행로를 명령하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고 믿을 수는 있겠으나, 아말렉 족속의 도륙을 자행한다든지(출 17장; 삼상 15장) 여호수아 군대를 돕기 위해 낮 시간을 연장해주는 구약성서의 신(수 10장)을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카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인과적으로 규명하기 위하여 신을 원인자로 끌어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인간적 원인을 충분히 궁구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신의 섭리를 끌어들이려는 입장을 지적 태만이라고 본다. 세속사나 인간세계의 드라마의 전개과정을 충분히 인간적 차원에서 규명한 후에야 더 넓은 사고(예를 들면 신의 섭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탈신학적인 계몽주의적 역사이해에 대한 반론이 없지 않다. 러시아의 유신론적인 실존주의자인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나 미국의 기독교윤리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나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마리탱 같은 저술가들은 역사의 자율적 지위는 인정하면서도 역사의 목적이나 목표는 역사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초월적인 기원과 지향을 승인한다. 반면에, 카는 역사의 초월적 기원과 지향성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좌우하는 어떤 초월적인 힘-기독교의 신이건, 자연과학자들의 보이지 않는 신이건, 헤겔의 세계정신이건 간에-을 믿는다는 것은 진지한 역사의 입장과 조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역사란 조커 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다고 본다.

카의 이런 입장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관을 펼치는 성경의 역사의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하나님 원인론으로 불릴 정도로 단일한 원칙을 갖고 역사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요즘 말로 말하자면 과도한 하나님 원인론적 축소주의에 기대어 역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주전 9세기 다윗-솔로몬 제국의 분열과 쇠락,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 멸망, 주전 6세기 남유다의 멸망, 바벨론 유수의 종료와 페르샤 제국의 흥기, 그리고 바벨론 귀환포로들의 중건 역사 등 모든 굵직굵직한 역사적 격변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의 빛으로 해석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중심으로 모든 이스라엘 안팎의 역사를 해석한다. 이스라엘 민족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는 이스라엘을 통치거점으로 삼아 온 세계로 확장되는 하나님나라의 건설이었다(사 9:6~7; 11:6~9; 출 19:5~6; 창 18:19). 하나님나라는 온 열방 백성이 하나님 영광을 인정함으로써, 스스로 무장해제하여 우애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통해 구현된다. 구약 예언자들은 공평과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세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을 가득 덮는 상황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현존이라고 보았다. 신구약 성경은 이 하나님나라의 목적과 의도의 빛 아래서 이스라엘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고 있다.

물론 성경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님 원인론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보통 역사가들이 추구하는 합리적·이성적·역사적 해석을 포기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현대 역사가들이 추적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후원인들을 다 포괄하면서 그것들을 초월적 틀 안에 재배치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경의 역사해석은 카 역사관의 중요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그것 위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라는 역사철학적 요소를 추가한다고 보는 편이 더 객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런 구약성경의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이 잘 드러난 곳이 구약의 다니엘서나 4세기 교부 성 오거스틴이 지은 <신의 도성>이다. 전자는 세계제국들의 흥망성쇠의 역사적 격변기에 이스라엘이 겪는 고난의 의미를 잘 포착하고 있고 후자는 로마제국이 고트족과 롬바르드족 등 게르만족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유린당하며 쇠망해가는 위기의 상황에서 기독교회의 종말론적인 위상, 초월적인 지평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이 두 책이 보통 역사가들이 추적하는 사건들의 인과관계 규명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나,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더욱 부각시켜 나머지 인간적 요인들의 역할을 무색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성경적 역사관은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나 타키투스 등 흔히 말하는 세속적인 그리스 로마 역사가들의 역사관과 다르다. 그것은 역사주의적 인과 관계 규명에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라는 일견 형이상학적 준거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가 이런 하나님 원인론적 설명이나 단일 원리중심의 역사해석에 대하여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와 같은 법칙이나 사적 유물론과 같은 원리를 갖고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결정론적인 역사이해로 귀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초월적인 준거나 역사 내재적인 원칙에 호소한 역사해석이 원인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는 여기서 신학적 역사해석이나 칼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해석 둘 다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에게는 ‘진보와 변화’만이 역사를 해석하는 틀이 될 뿐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역사가들이 역사라는 무대에서 하나님 원인론적 해석틀을 추방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카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원인론에 대한 호소가 인간적 원인론들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가로막는 지적 태만과 정직하고 투명한 이성적 연구를 제어하는 교조적인 오만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의 역사관은 유신론적인 인격신을 역사의 주관자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신학적 입장을 견지한 그리스도인 역사가들이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을 아주 정치한 중간공리로 환원해 구사하지 않는다면 카가 만들어 놓은 역사학의 운동장에 참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라고 고백하는 기독청년들이 세속학문에 대하여 느끼는 고뇌와 긴장이 있다. 기독청년 학자들은 인간 역사의 진행에는 역사 내재적인 인간세력들, 동기들, 이해관계들, 기타 우발적 요인들 외에 하나님의 목적과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적·변증적인 맥락에서 기독청년들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라는 이 신학적 용어를 일반 역사학 용어들로 치환할 수 있는 길을 개발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관의 원형인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역사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전 8세기 이스라엘과 유다의 예언자들의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

성경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관을 가진 예언자들이나 서기관들, 제사장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이다. 성경은 온 세계 만민을 위한 메시아적 사명감을 의식하며 고난의 역사를 헤쳐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선언서(mission statement)다. 더 구체적으로 성경은 이스라엘의 존재이유, 구원과 심판, 갱신과 정화의 목적을 하나님 원인론적인 역사관을 취한다. 이런 하나님의 원인론적 역사관은 뉴톤적인 기계론적 우주관 아래서는 용납될 수 없을지 모르나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뉴톤적인 근대물리학과 우주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학문의 교도권을 내준 금세기에는 뉴톤적인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불확실성의 영역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사건 혹은 사태를 ‘확률’로 설명하는 최근세기의 양자역학, 불확정설 원리, 중층결정론(overdetermination) 등은 자기충족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질서 속에 하나님의 개입여지가 얼마든지 확보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기적이나 역사개입이 반드시 창조질서의 인과론적 질서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일어날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을 시도하는 기독청년들의 학문적 분투에서 감당해야 할 짐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독청년들은 일반역사학의 준칙들을 다 섭렵하고 파악하되 사실진술, 인과관계의 규명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 사건들을 예언자들처럼 하나님 원인론적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주전 745년 경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41년 간의 통치와 남유다 왕 웃시야의 52년간의 통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앗수르의 왕위에 등극하여 전무후무한 정복주의적 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주전 740년대 초반부터 북부 시리아 일대를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 정복 군주는 이후 신속히 팔레스타인 및 이집트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사 10장,  왕하 18:33~35[참조: 사 14:13~14]). 예언자들은 팔레스타인 역사의 지평 위에 파괴적으로 육박하는 거대한 산사태와 같고 홍수와 같은 앗수르의 출현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 심판의 서곡임을 느꼈다. 앗수르 제국의 팔레스타인 침략과 정복으로 마침내 북이스라엘 왕국은 멸망당했고 남유다는 나라의 중축이 파쇄되는 치명상을 입었다. 아모스·호세아·이사야 그리고 미가가 이 잔혹한 앗수르 제국이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는 대행자라고 선포했다. 예언자들은 그 앗수르 범람과 팽창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의 빛 아래서 앗수르의 침략을 파악한 것이다. 독일 구약학자 마틴 노트(Martin Noth)는 이러한 예언자들의 역사신학적인 모토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예언자들은 그들의 동시대적 사건들을 보편적 관점으로 해석한 최초의 역사가들이었다. 그들은 과거를 뒤돌아보는 식으로 설명하지도 않았고, 미래 사건의 일반적 향방에 대해서 막연하게 예언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대의 사건들 속에서 한 거룩한 계획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하였다.”(<The History of Israel>, Edinburgh: T&T Clark, 1958년, 256쪽)

이와 같이 8세기 예언자들이 세계사를 하나님의 심판의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을 역사 속에서 선택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세계사적인 구원계획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이제까지 인도해오셨다”고 믿는 신앙고백 때문이다. 예언자들은 철두철미하게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얼마나 신실하게 복무했는가에 따라 평가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닥친 민족적 멸망 재난은 이스라엘의 존재기반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과 율법을 지키기 못한 불충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언자들은 사회과학적 인식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막연히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총칭적인 집단의 죄를 규탄하기보다는 국가 공동체의 운영에 결정적인 책임을 왕·귀족·고관들 그리고 지배계층의 죄악을 탄핵했으며 그들의 죄악이 국가멸망을 초래했다고 적시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지도층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적 요구(십계명과 기타 부대 율법)를 준행하지 못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양산하고 그들을 압제한 그 죄악이 국가멸망을 초래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들은 국가 멸망의 책임을 강대국이나 외국 침략군의 공격에 돌리지 않았다.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어기고 공동체 구성원들 중 약한 자들을 극도로 압제하여 공동체 소속감을 박탈해버린 잔혹한 지배계층과 중추적인 민족 구성원들에서 물었다. 이처럼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온 사회적·정치적 총체 부패의 우선적 책임을 이런 중상류층 이상 계약공동체 구성원들에게서 찾았다.

예언자들의 역사해석은 요즘 말로 말하면 사회과학적 분석과 인식 위에 바탕한 것이었다. 모든 예언자들의 심판 언어가 집중적으로 겨냥한 대상은 왕, 귀족들, 고관들, 지주들, 거짓 예언자들과 종교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이 지적한 죄는 아주 구체적이었다. 하나님의 기업으로 배분된 이스라엘 자유농민의 땅을 빼앗은 지주들의 출현과 이들의 토지독점, 이들의 불법을 눈감아 준 악한 재판관들의 타락한 재판, 이들의 악을 보고도 정의를 집행하지 못한 왕권, 이들의 죄악을 신의 이름으로 승인하고 축복해준 제사장들의 영적 무지몽매가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하나님의 추상같은 심판을 촉발시킨 죄악들이었다. 예언자들의 선포는 철저한 사회과학적 분석, 냉정하고도 정확한 국제정세 인식, 그리고 강하고 잔혹한 지배권력 엘리트 집단에 의해 생존권과 인권을 박탈당한 채 아우성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공감과 체휼에 바탕하고 있었다.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은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있는 객관적이고 공변된 학술담론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예언자들의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 즉 신학적 역사해석의 구성요소들을 살펴보자.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관의 요소들

1. 신학적 역사관은 내인(內因) 중심의 역사해석학이다

에언자들의 신학적 역사관은 한 나라나 왕조의 몰락과 멸망을 외인론적으로가 아니라 내인론적으로 우선 해석하는 관점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몰락이나 멸망은 우발적인 상황, 즉 때마다 일어난 강대국 혹은 패권주의적인 세계정복 전략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왕국 내에 누적된 불의·불법·반(反)공동체적 죄악이 임계점에 도달해서 생긴 모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해석했다. 유다나 이스라엘은 강대국이 와서 그것들을 각각 정복하기 전에 이미 계약공동체적인 결속감이 파괴되어 있었다. 지배층이 기층민중을 향해 이미 내부정복전쟁(계급적 계층적 압제와 수탈)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강대국이 와서 정복하기 전에 이미 급속한 공동체성의 해체를 겪고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은 주전 8세기나 주전 6세기경에 닥친 국가적 재난의 원인을 찾을 때 강대국의 출현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를 부패와 총체적인 공동체 해체를 초래한 중심적 지배계층의 죄악에서 찾았다. 이런 예언자적 역사관은 침략자인 이민족에 대한 증오심을 초극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도덕적 자학사관이 아니다. 이것은 엄정한 자기추궁적인 역사해석이다. 우리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일제에 의한 멸망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1811년 홍경래 농민반란, 1862년 진주민란, 1894년 갑오농민 혁명 등은 조선은 지배계층의 민중수탈과 압제로 그 자체로 존립할 수 없는 내부전쟁중인 나라였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기독청년들이 일제하 독립운동사를 연구할 때 조선 멸망의 원인을 이사야나 예레미야·아모스나 호세아처럼 추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신학적 역사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제3자 활용을 적극적으로 승인한다

신학적 역사관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집행할 전혀 예기치 않는 제3자의 역할을 주목한다. 지배자의 정복전쟁이 다른 한편으로는 옛 제국의 포로민들에게는 희망과 해방의 거룩한 전쟁이 됨을 믿는다. 주전 6세기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위한 하나님의 새 언약 공동체는 페르시아의 전쟁승리로 이뤄졌다. 그 페르시아의 승리는 하나님의 행동이었다(사 44~45장). 페르시아 제국 아래서 에스라 느헤미야의 제한 자치가 이뤄진다. 어찌보면 악한 나라나 잔혹한 제국마저도 하나님 백성들을 위한 해방군의 역할을 떠맡는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볼 때 1945년 이후 미군은 바벨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했으나 유다를 식민지화했던 페르시아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남북 분단 체제는 페르시아 체제 아래서 메시아를 기다리던-다소 불완전하게 회복된-바벨론 귀환포로 공동체의 탄식을 누적시키는 시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대기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는 귀환포로 공동체의 자기정체성 회복 투쟁을 자세히 보여준다. 바벨론 귀환포로들로 구성된 페르시아의 식민지 예후다(유다)는 식민지 백성으로 만족하지 않고,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는 구속사적 약속의 상속자로서의 자기이해를 구축해갔다. 우리 겨레가 언제까지 분단시대의 포로로 살 것인가? 기독청년들은 이런 성경적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우리 겨레의 역사 속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궁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3. 신학적 역사관은 심판을 넘어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지를 긍정한다

신학적 역사관은 재난과 멸망 너머를 바라보는 희망의 역사관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면 앙시엥레짐의 해체는 새 언약 공동체가 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식민주의 역사관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과 필연적 역할을 강조한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일제 식민지가 36년만에 끝난 것은 독립투쟁의 결과로 보면 민족주의적 역량결집에 최우선 관심을 보인다.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은 이런 하위적인 인간적 요인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강조한다. 기독청년은 민족의 강고한 독립투쟁만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고 그것을 추동하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의지 때문에 1945년 8·15해방이 일어났다고 본다. 이런 하나님 원인론적인 역사해석은 패배주의적·현실주의적·현실순응적 친일파들이나, 일본의 대동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봉건질서에 굴복하여 친일활동을 한 이광수·최남선·윤치호(윤리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는다. 그들은 민족의 재난(일제 식민지) 너머에서 시작될 새 언약 공동체의 탄생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강대국이나 제국주의적인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군사력 물리적 힘의 시위에 기가 질려버렸다. 그들은 현실적인 군사적·경제적·정치적 힘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세계 역사 운행 법칙에 대한 신뢰를 결여하고 있었다. 친일파들은 일제강점기가 새로운 언약공동체의 해산을 위한 창조적 고통기요, 해체기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예언자들의 역사관에 따르면 조선과 대한제국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의 다림줄에서 너무나 절망적으로 기울어져 위태롭게 된 건축물로서 창조적으로 파괴되었어야만 한 구조물이었다. 이 역사관에 따르면 한 나라와 왕조의 멸망은 낡고 모순에 찬 앙시엥레짐의 장엄한 멸망이며, 더 위대한 태양의 일출을 기대하는 낡아져버린 태양의 일몰이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긍정하고 더 나아가 패권주의적 국가들에 대한 궁극적 심판을 믿는다. 예언자들은 자신의 민족에 가해진 하나님의 심판의 가혹한 궤적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갖는 밝은 면을 강조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심판의 불꽃에 의해 정련된 남은 자들이다(아모스·호세아·이사야·에스겔·예레미야 모든 예언자들의 마지막 언어는 희망). 이들은 재난의 의미를 아는 자들로서 바벨론 포로살이의 불가피성을 알 뿐만 아니라 고토로 돌아와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어가야 할 사명감을 느끼는 자들이었다. 에스라 1장 1절은 예레미야의 예언 성취로서의 고토 귀환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포로 교포들 2~3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정표 삼아 이스라엘 고토로 되돌아온다. 에스라·느헤미야 등은 바벨론에서 태어난 포로 2세들이다. 그들은 가나안 고토에 대한 생리적 결속감이나 정서적 유착의식이 없었으나 예레미야의 예언을 믿고 고토로 돌아와 그곳에서 이뤄진 하나님의 구속사를 계승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난과 멸망의 의미를 아는 자들만이 멸망과 재난 너머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 남은 자들은 이상왕의 도래와 이상왕의 통치로 새롭게 개시되는 새 시대의 여명을 앞당겨 경험한 자들이다.

결론

이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성경저자들은 인간의 결정 및 자연적 요소들 외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확보되는 공간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다. 하나님 원인론적인 역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역사가 자연과학적 객관담론을 지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역사는 차라리 이머징 처치·철학적 상상력에 터한 시와 영감어린 예술에 가깝다고 본다. 기독청년들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의 빛 아래서 우리 겨레에 일어난 역사적 격변, 흥망성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 멸망, 기독교 복음 시작, 해방, 민족전쟁, 그리고 오랜 분단 시기로 이어지는 이 역사의 흐름에 작동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궁구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어떤 역사적 과업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대의명분에 충실한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처럼 우리는 우리 시대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섬기다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존재다(행 13:36).

우리는 광복절을 맞으면서 다시 묻는다.  우리 겨레가 반세기가 넘는 분단체제를 유지하며 동족상잔의 긴장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데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체제의 존속에는 인간 내재적인 동기나 원인으로 귀속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분단시대를 사는 기독청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받들어 우리 겨레의 역사 속에 뿌리내린 이 근본모순을 초극하고 새로운 역사 창조의 주체가 될 것인가? 우리 겨레의 고통이자 원죄인 분단 시대는 단일민족이라는 신념을 조롱하고 남북한을 아예 다른 나라로 갈라버리시려는 하나님의 장기계획의 일부일까? 단일민족이라고 단일 민족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이 세계에는 단일민족이지만 한 단일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흩어져 사는 족속들이 얼마나 많은가? 분단체제를 영속화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아니면 이 분단 체제의 존속 안에는 분단체제를 죄악된 역사, 하나님께 연단 받는 시기로 영접하고 새로운 화해와 일치의 대통일 시대를 열망하도록 갈증을 촉발시키려는 신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을까? 우리는 위에서 내린 두 가지 시나리오 중 둘째 시나리오라고 믿어야 분단체제 청산의 능동적 노력을 경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에 대한 석명(釋眀)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는 자신의 미래를 기획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구체적인 역사 속에 성취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주관에 대한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뜻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숙명론적 결정주의로 퇴행하는 대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역사변혁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희망의 역사관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원인론적인 역사이해는 실상 모든 인간적 차원의 사실이해와 사회과학적 인식의 엄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론가능한 입장이 될 수 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