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부분이다.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고 또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한다. 예수님을 자신의 안녕이나 유익과 배치될 때에는 부인하며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것은 나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예수님은 나의 안녕과 유익을 위해서 돌아가셨기에 나도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자신이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하였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수님께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고기 잡으러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한 회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뉘우치는 모습이 있다는 점에서는 유다와 다르다고 보여진다. 회개는 기회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잘못일지라도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자신이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하였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수님께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고기 잡으러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한 회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뉘우치는 모습이 있다는 점에서는 유다와 다르다고 보여진다. 회개는 기회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잘못일지라도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