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침체와 제자도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적 침체를 경험했을 것이다. 영적 침체를 우리의 건강에 비유해보면 그것은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기간을 의미할 수 있다. 영적으로 냉랭하며, 기쁨이 없고, 깨달음이 없으며, 마치 사막을 다니는 것과 같은 기간들을 말한다. 이런 기간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예외없이 누구나 경험하게 마련이다. 이런 영적 침체는 왜 오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단순화시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발전적인 의미로서의 영적침체가 있다. 이것은 어떤 범죄나 불순종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이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우리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일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단지 우리가 이 세상의 조건과 악의 세력의 저항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올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는 영적 침체를 들 수 있다. 대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영적 침체를 경험하는 경우 후자보다는 전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후자의 경우는 우리가 그 원인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영적으로 회복하고 풍성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장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거나, 기도생활이 허술했거나, 혹은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렸을 경우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고, 기도를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하고, 예배도 정상적으로 드린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영적 침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인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한동안 이유없이 계속적인 침체를 느끼며 살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영적 침체를 얼마나 자주 느끼며 경험하는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초점은 우리가 평소에 영적 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날드 휘트니(Donald S. Whitney)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영적연마(Spiritual Discipline for the Christian Life, NAV Press, 1992)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변화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사용하신다고 했다. 첫번째는 사람들이다. 지금 내 주위에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을 두어서 나를 깎아가는 작업을 하신다는 것이다. 종종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일이 더 잘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피부에 와 닿을 때는 매우 아프게 와 닿는다. 마치 사포로 맨 살을 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 그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그 과정을 좇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상황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손에서 벗어나 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 세상의 악이 주도하는 상황도 허다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통해서도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영성을 더 좋게 만드신다. 세 번째는 영적 연습이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에서 말하는 경건의 연습은 바로 이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영적훈련은 많은 경우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이 훈련을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이 훈련이 제대로 된 사람은 영적 침체가 왔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훈련이 그렇듯이 영적 훈련은 인내가 필요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훈련들을 자원해서 기쁨으로 받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대개는 외부의 압력이나 명분에 떠밀려서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마도 운동선수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평소에 영적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만큼 수월하다고 본다. 오늘날의 세상은 영적 연습을 통해서 영성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어떤 자극이나 외부의 요건에 의해서 쉽게 영성이 회복되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종종 그런 것도 사용하신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햇수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런 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이 내 속에 메시지로 변해서 나를 책망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메마른 나의 마음을 향해서 물댄 동산처럼 나를 변화시켜 주시기도 하는 경험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 우물 하나를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온통 물로 흥건해 질 수 있듯이 우리의 영적 침체도 말씀의 샘을 발견했을 때에 충만하게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이 샘을 통해서 공급 받는 것은 마치 배에서 생수의 강물이 흐르듯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런 비밀을 과거 영성 생활을 꾸준히 했던 성도들은 이미 터득한 것 같다. 죠지 뮬러, 마틴 루터, 칼빈, 리챠드 박스터, 빌리 그래함 등은 좋은 예이다. 이런 경우는 말씀을 단순히 연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내면세계까지 깊이 스며들게 하며 무의식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기도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다시 부합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 기도야말로 우리의 영적 침체를 이기는 귀중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영적 침체가 온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침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개인적 및 공적 예배는 영적 침체를 이기는데 있어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예배는 필연적으로 지적인 것, 감정적인 것, 의지적인 것이 모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예배는 영적 연마를 통해서 더 깊어질 수 있다. 내 마음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 등은 우리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본성을 이기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듣고 거기에 호응하는 예배를 드림으로 영적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예기치 않게 하나님의 터치를 받게 되고, 하나님께 터치를 받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소생하게 된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영적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많은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목회와 경건에 대해서 책과 테이프, 미디어, 연구 보조 자료들은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영적 침체를 없이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 선진들이 계속 씨름 해왔던 영적 연마의 연습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우리가 거기서 헤쳐 나올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는 영적 침체에 빠지기 쉽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우리는 영적 연습을 신체적인 운동 못지않게 더 열심히 해서 영적 침체를 방지하고 살아야만 하며 그럴 때만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