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부분이다.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고 또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한다. 예수님을 자신의 안녕이나 유익과 배치될 때에는 부인하며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것은 나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예수님은 나의 안녕과 유익을 위해서 돌아가셨기에 나도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자신이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하였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수님께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고기 잡으러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한 회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뉘우치는 모습이 있다는 점에서는 유다와 다르다고 보여진다. 회개는 기회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잘못일지라도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였는데 비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고백하였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베드로는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상태였지만 지금의 이 고백은 진정성이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번화하고 로마황제의 도시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도 이 고백은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겠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 삶을 드리고 그분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순교의 현장이 아니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내 삶을 드릴 수 있을까? 주어진 일에 주님께 하듯 섬기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마음 뿐이었던 전화심방을 실천하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