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부분이다.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고 또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한다. 예수님을 자신의 안녕이나 유익과 배치될 때에는 부인하며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것은 나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예수님은 나의 안녕과 유익을 위해서 돌아가셨기에 나도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자신이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하였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수님께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고기 잡으러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한 회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뉘우치는 모습이 있다는 점에서는 유다와 다르다고 보여진다. 회개는 기회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잘못일지라도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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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간질병자 소년을 고쳐주시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시며,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너의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말씀하시면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이 옮겨지며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은 결국 믿음이 없다는 말씀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이 듣고 많이 말하게 되는 믿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믿음이 적거나 많다는 것은 무엇이며, 과연 믿음이 많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맞는가 라는 질문을 새삼 던져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믿음은 믿는 대상이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굳게 확신하며 얼마나 지속적으로 붙드는가로 이해되어진다. 신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행함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두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 이야기를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 나 또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지.. 그 근심의 원인은 자기 자신의 안녕과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일 터.. 근심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동행하는 나의 발걸음이 되기를..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내시는 예수님. 이 단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진리, 원칙, 타협없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공동번역),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니'(새번역) 세금을 내시는 것이다. 지혜로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진리가 이 땅에서 몸을 입고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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