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기독교2018. 7. 12. 15:51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 - 10점
스캇 맥나이트.조지프 모디카 지음, 최현만 옮김/에클레시아북스


여기가 바로 (인간 내면의 죄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관점(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유대적 정체성의 극복을 강조하는) 소위 새 관점이 손을 맞잡아야 할 지점으로, 두 관점은 바울이 우주적 세력의 탓으로 돌린 중심주의에 내포된 서로 다른 측면을 각각 강조한 것이다. 123

 

바울은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 껍질처럼 타인을 희생시키는 이 같은 안을 향하는”(구심성, centripetal) 삶의 방식이 개인과 공동체에서 구현되는 모습에 우주적 권세가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런 삶은 바울이 오직 자기희생적인 주님의 성령에게만 돌린 밖을 향하는”(원심성, centrifugal) 삶의 방식과 대조된다. 124

 

한 공동체는 (1) 구성원의 다양성과 (2)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통일성, 둘 다를 특징으로 가질 수 있다. 125

 

새 관점의 관심사는 개인 구원 중심의 바울 해석이 (리처드 헤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 완결적”(ecclesiotelic) 해석학, 즉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목적을 한 백성의 형성으로 보는 해석학의 필요성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개신교 복음주의가 개인주의를 강조하면서 교회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울은 파괴적이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육신의 행위”(5:19-21)를 낳을 뿐인 육체의 욕망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이성과 토라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욕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따라 걷는 것”(5:16),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18), 그리고 성령과 계속해서 보조를 맞추는 것”(25)이다. 175

 

성령이 함께하시는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가 현시되는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바울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표현인 서로는 신자들의 서로를 향한 헌신의 철저함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지체이며, 서로 세워 주어야 한다. 또한, 서로 돌보고, 타인의 유익을 추구하며,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짐을 지며, 서로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복종하고,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사랑 안에서 서로 헌신하고, 서로 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 178

 

그리스도인의 삶은 공동체라는 맥락이 특징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마지막 요점으로 이어진다. 즉 바울 사도의 윤리에서 핵심은 사랑이었다. 178

 

바울이 생각하는 단합은, 근본적인 교리 면에서 의견 일치를 이룬다는 전제 조건 아래서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백성의 단합이 중요한 이유는, 단합된 공동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선언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합된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쟁취하신 승리가 적대적인 우주의 세력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단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213

 

우리는 바울이 인류를 반드시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유일한 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이런 입장이 가진 까닭은 아마도,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 연합된 모든 사람이 누리는 하나님의 힘주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가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218

 

바울이 어디서도 조직 신학을 서술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바울이 각 교회와의 독특한 관계 안에서 특정 교회가 직면하고 있던 구체적인 일상적인 쟁점과 무관하게 모세 율법과 칭의의 특징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19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옛 관점은 핵심 문제를 개인의 속량으로 보았지만 새 관점의 시선은 백성으로, 이스라엘과 교회로 이동한다. 옛 관점의 초점이 실존이었다면, 새 관점의 초점은 교회다. 232

 

이신칭의는 유대교의 행위 의를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양자 모두의 구원을 위한 포용적인 틀이다... 옛 관점의 동력이 개인 구원론이었다면, 새 관점의 동력은 확장의 교회론이었다. 233

 

바울에게는 성령에서 도출된 교회 중심 윤리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윤리는 교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었다. 258

 

여기서 바울이 제시하는 목록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나 사색의 삶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제시한 목록이 얼마나 타인 지향이며 교회 중심인지 주목하라. 259

 

바울은 사랑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할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로마제국의 동쪽 지역 전체에 걸쳐 이제 가정 교회 안에서 서로 유대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던지는 도전의 의미를 바울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도전에 응하는 유일한 길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262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이해할 때, 개인을 과도하게 중시하고 공동체의 집단적 삶을 과도하게 경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항목들은 대부분 각 신자의 내면적인 삶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집단적 삶과 관계된 것이다. 292

 

성령의 열매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우리와 판이한 사람들과 동료로 살도록 떠밀린다. 성령의 열매인 기쁨 안에서 이 공동체는 동료인 다른 사람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승리를 축하한다. 성령의 열매인 평화 안에서 이 공동체는 어둡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냉정과 평온을 유지한다. 성령의 열매인 인내 안에서 우리는 밀접한 공동체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성령의 열매인 친절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접한다. 성령의 열매인 선행 안에서 우리는 동료인 타인의 유익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성령의 열매인 신실함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한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을 향한 철저한 충성과 헌신을 맹세한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 안에서 우리는 분노와 냉소가 아닌 은총과 사랑으로 서로에게 말한다. 성령의 열매인 절제 안에서 우리는 타인을 모임에서 배제하거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삼간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한 공동체를 떠밀어, 왕 예수가 설립한 새로운 세계의 질서로 나아가게 할 때, 그 공동체를 특징짓는 표시는 다름 아닌 단합된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성령의 열매들이다. 293

 

바울이 말하는 성령 육체 간 갈등은 한 사람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육체가 매우 활발하게 작용하는 세상 속에서 미래의 삶을 살아내는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육체는 교제와 단합, 성결을 파괴한다... 성령의 방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오직 성령만이 우리 같은 타락한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실 수 있다. 294

 

신약의 기록 목적은 교회가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예수의 부활과 마지막 갱신 사이의 시간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313

 

메시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된 것의 의미는 교회를 통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정말로 이 내용은 비밀의 경륜이 드러난 것이었다. , 창조주 하나님께서 늘 마음에 두셨던 내용의 묵시였다. 그리고 에베소서 4,5,6장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증표와 상징이 되려면 교회의 연합과 거룩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330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