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IVP, Dallas Wilard)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역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지침
3.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들어맞는 것이 대화적 임재 방식이다. 성품 개발의 틀이 되는 것도 바로 대화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분별하기. 의사소통은 두가지 방시긍로 이루어지는데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나아가 우리를 통해-들려주시는 음성 내지 말씀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그분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받는 자쪽의 훨씬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며, 하나님의 가정 내지 나라에서 매우 성숙한 사람들 사이에 아주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되, 일하시는 그분께 온전히 흡수됨으로써 아는 수준이다. 특히 우리는 상대가 집중하고 있는 바를 인식하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의도를 읽을 수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의 전반을 아셨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셨다.
잘못된 해석. 첫째, 매순간 메시지를 주신다는 견해는 성경과 교회의 공동체험으로도 입증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베드로나 바울, 예수님도 쉬지않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기적이 너무 많으면 우리는 약해지며, 자연법칙에 순응하기 보다는 기적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적은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 줄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 성경에 다 있다는 견해. 우리는 성경의 원리 안에 있되 성경의 명시적 세부 내용을 벗어나는 가르침의 필요성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셋째, 아무래도 좋다는 견해 이것은 어떤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는데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많은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은 우리의 역할이 없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도 중요하다.
4. 대화하는 우주
5. 세미한 소리와 그 경쟁자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개인들의 체험 중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세미한 음성'이다. 이 세미한 음성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에 맞고 가장 가치있고 우선적이며 개별적인 의사 소통 형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숙한 인격적 관계 속에서 자신과 동행하는 이들에게 대체로 이 내면의 음성을 사용하여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선포하고 알려 주신다. 지식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하나님의 동역자이자 친구로서 그분의 일에 동참하는-의 제반 기능이 최대한 개입되기 때문이다.
성경 이상의 것이 필요한가? 음성, 환상, 꿈, 예언하는자, 개인의 생각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성경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말을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데 최소한 요구되는 것으로 본다면, 성경에 근거할 때 성경과 교회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있다(롬1:19-21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음). 그러나 '필요하다'라는 말이 하나님과 개인 간의 참으로 인격적이고 구속적인 관계에 요구되는 것을 뜻한다면, 성경과 교회의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 최소한 각 개인의 삶에서 개별적인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전의 비문명 시대에 비해 훨씬 성숙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것 같은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가 없어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주님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모든 능력을 행하시며 강한 자로 나타나시고 지금 이 땅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손을 펴시거나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분을 부당하게 대하는 처사다(스펄젼의 시 103:2에 대한 주해). 성경이신론을 주의하라.
지도자가 해야할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일이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실험을 통해 배워야 하는 일임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깨우쳐 주는 것이다(엘리 제사장).
음성의 우위성. 음성은 내용이 명료하고 듣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극적일수록 덜 성숙한 것이고,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숙을 위해 모호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6.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와 구속은 그 자체가 곧 말씀이다. 어떤 백부장(눅7:2)은 권위를 가진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위력에 대한 믿음, 그것도 체험적 지식에 근거한 믿음이다. 예수님은 눈 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기도하신 적이 거의 없다. 그분은 대체로 문제 자체를 향해 말씀하시거나 그 문제와 관련된 모종의 행동을 취하신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경은 아니다. 성경은 독특한 기록된 형태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다. 성경은 시편 기자의 말처럼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서서(시119:89) 자연 질서를 드러내는(시19:1-4)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 널리 퍼져 흥왕하여 더한(행12:24)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오늘 각 신자들과 개인적으로 나누실 자세한 대화가 나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원리면에서 그 경계를 정해준다. 성경 안에 묘사된 광의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과 화목하게 살려는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겸손하고 꾸준히 성경에 다가감으로써 누구나 살아계신 말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성경을 공부할때 우리를 교만, 무지, 두려움, 조급함에서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살아계신 말씀인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7.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속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우리를 통한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통해서다.
생명이란 구체적인 관계에서 행동하고 반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씻김받다. 엡5:25-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에 씻겨 마음이 변화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실제적인 일이된다. 말이란 근본적으로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과 생각의 구습-생각과 감정과 행동과 상상과 개념화와 신념과 추론의 낡은 습관-을 제거하시며 그 자리에 다른 것, 즉 그분의 생각, 그분의 태도, 그분의 믿음, 그분의 관점과 해석방법과 그분의 말씀을 넣어주신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진행 과정에서 대화는 교제로 발전하고 교제는 연합으로 발전한다. 교제가 연합으로 발전되면 '네것', '내것'의 인식이 없어지고 '우리 것'만 남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의 새 생명과 동화되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끝내 선을 고수하는 새 생명, 그것과의 연합을 인정하고 인식하며 단언하는 것이다.
구속과정에서 기록된 말씀이 하는 역할. 성경은 교제를 확립시켜 주고 연합의 길을 열어 주는 하나의 의사 소통 방식이다. 순종하는 자세로 읽으라. 즉 진리를 찾으려는 열망을 그대로 행하고 실천하려는 열망에 굴복시켜야 한다.
성경으로 기도하기. 계시된 그분의 뜻이 내게도 진리여야 한다는 열망을 품어야 한다. 1년 동안 성경의 모든 단어를 눈앞에 스쳐 지나가게 하는 것보다 딱 열구절만 내 삶의 본질로 바꾸는 편이 훨씬 낫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장소에 가는 마음으로 선택한 본문을 펼치라. 1.정보, 2. 열망: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3. 단언: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다짐, 4. 간구: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 5 적용의 선포: 하나님의 은혜로 과연 나도 그렇다는 고백. 특히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지켜볼 때 그런 능력이 주어질 것이다.
8. 하나님의 음성 알아듣기
세개의 빛으로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환경, 성령의 감화, 성경 말씀을 의미한다. 이 세가지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이라고 믿어도 좋다.
책임있는 판단의 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사는 삶은 우리 자신의 판단을 배제하지 않는 삶이다. 세가지 빛이란 한마디로 마땅히 행할 바에 대한 책임있는 판단과 결정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각 빛이나 세 빛 전체는 하난미의 직접적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대개 실제로 그렇다.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듣게 하는 것은 권위, 정신, 내용을 살펴볼 때 알 수 있다. 권위는 우리의 의식에 감화를 일으키는 무게 내지는 영향력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언제나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오류없이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실제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은 첫째, 모든 신자가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직접 체험할 수 있고 둘째, 우리에게 확신과 위로와 평안을 공급하며 셋째, 사이비 광신자와 율법주의에서 우리를 지켜주며 넷째, 성경이 말하는 질적인 삶을 현실로 맛보게 한다.
9. 인도하심 그 이상의 삶
믿음이란 지식의 반대가 아니라 보는 것의 반대다. 은혜란 노력의 반대가 아니라 대가로 얻는 것의 반대다. 헌신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혼돈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할 뿐 아니라 뜻(생각, 지성)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막12:20). 그러므로 성경을 근거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사소통 방식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이해하며 간절히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문제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를 만났을때 못지않게 삶이 평탄할때도 그 음성을 진심으로 들으려 한다. 즉 평소에 들을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꾸준히 듣는 시간을 갖고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내면의 공간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요령이나 수법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결과를 위해 우리가 '조종하는 분'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억지로 말씀을 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과 화목한 연합 가운데 있지 않을때 특히 그러기 쉽다. 억지로 말씀을 얻으려는 사울왕(삼상13:5-10).
'스스로 알아서' 내리는 결정
특별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로는 우리가 하나님 속을 썩인 것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삶의 행로를 정할 때 대부분 우리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우리의 성품을 개발하기도 하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시험하시기도 한다. 우리의 영혼이 절대적으로 독립하는 만큼만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만큼만 우리의 영혼도 절대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하나님의 뜻', 존 우드 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