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ching out/ Henri J. M. Nouwen(두란노)
1부 자아를 향한 발돋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2부 동료를 향한 발돋움: 적개심에서 따뜻한 환대로
3부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 환상에서 기도로
진정한 영적 안내자는 무엇을 하고 누구를 찾아갈지를 말해 주는 대신, 우리에게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권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고독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소양 혹은 태도이다...외로운 사람에게는 내면의 질문이 없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대답을 원하며 그 대답을 지금 당장 원합니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는 우리 내면의 자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외로움에 쫓겨서 살 때는 자신의 갈급한 필요에 즉각적으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나 사건들만을 고르려고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민감성을 계발하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자네에게 정말로 바라고 싶은 바는...자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들 자체를 사랑하도록 하라는 것일세...자네가 그것들을 삶으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구하지 말게.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네. 지금은 그 질문들을 삶으로 나타내게. 아마도 어느 정도의 기간을 살아가노라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네는 점차 그 대답에 이르게 될 걸세...무슨 일이 일어나든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만일 그것이 자네 자신의 뜻과 자네 내면의 존재의 어떤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꺼려하지 말게나.(릴케, 'Letters to A Young Poet')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바뀌는 움직임은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쟁점이 되는 문제에 더 깊이 참여하는 쪽으로의 움직임입니다.
환대는 우선적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환대는 주인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라는 미묘한 권유가 아니라 손님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걱정과 염려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리지 않은 채로 놔 두지 못하고 또 명확하지 않은 상황을 명확하지 않은 채로 놔 두지 못한 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손님이라는 의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의식입니다.
가르침은 기독교의 영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물음들이 의식에까지 나올 수 있고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도록 두려움이 없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행동을 뜻합니다.
선생의 임무 가운데 두 가지 측면: 드러내 주는 것과 긍정하는 것
환대해주는 선생은 학생들에게 (학생들) 자신도 베풀 것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선하고 가치있는 것, 또는 새롱누 기여를 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은 긍정적으로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의사나 사회 복지사, 상담가, 목사와 같이 다른 이들을 도와 주는 직업을 통해서 동료 인간들에게 발돋움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되새겨야 할 점은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치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낯선 이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에 민감해지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게끔 해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베푸는 이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되며, 환자는 가르치고자 하는 선생이 됩니다. 선생이 자기 생각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준비하고 정리하는 동안 학습 내용을 익히듯이 환자도 자기 얘기를 듣고자 하는 치유자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얘기를 익힙니다.
수용과 대립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뗄 수 없는 두 면입니다. 이 두면은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대립이 없는 수용은 어느 누구도 섬기지 못하는 상냥한 중립성이 되고, 수용이 없는 대립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서운 공격성이 됩니다.
정신의 가난. 확실한 무지(docta ignorantia). 배움을 통해 터득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 하는 말과 그 상대방을 정말로 주의 깊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이 생각의 가난입니다.
마음의 가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체험을 우리에게 주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기도란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역설적인 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경험과는 상당히 달라서 우리는 그것을 부재라고 여기기가 아주 쉽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십자가 위에서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예수님의 외침)
무엇보다도 영적인 삶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삶입니다. 즉 수많은 좌절의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부재하신다는 생각을 깨달아 가는 고통스러운 시간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 한가운데로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최초의 표지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기대 속에서의 기다림을 통해서 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신비는 하나님의 부재를 깊이 의식하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팔을 뻗을 수 있으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언어입니다.
------------------------------------------------------
지난주 집에 내려가서 읽었던 책 중 하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책이었으나 이제서야 읽었다.
아마도 교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그동안 여러 책을 통해서 생각해 온 주제이었으나 원조는 바로 이 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도전하시는 부분...
또 중국 땅에서도 계속 내가 훈련받게 될 부분...
중국으로 out-reach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reach-out하라고 격려하신다.
올 한해 새로운 영적발돋움을 경험하길 기대해본다.
1부 자아를 향한 발돋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2부 동료를 향한 발돋움: 적개심에서 따뜻한 환대로
3부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 환상에서 기도로
진정한 영적 안내자는 무엇을 하고 누구를 찾아갈지를 말해 주는 대신, 우리에게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권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고독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소양 혹은 태도이다...외로운 사람에게는 내면의 질문이 없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대답을 원하며 그 대답을 지금 당장 원합니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는 우리 내면의 자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외로움에 쫓겨서 살 때는 자신의 갈급한 필요에 즉각적으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나 사건들만을 고르려고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민감성을 계발하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자네에게 정말로 바라고 싶은 바는...자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들 자체를 사랑하도록 하라는 것일세...자네가 그것들을 삶으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구하지 말게.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네. 지금은 그 질문들을 삶으로 나타내게. 아마도 어느 정도의 기간을 살아가노라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네는 점차 그 대답에 이르게 될 걸세...무슨 일이 일어나든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만일 그것이 자네 자신의 뜻과 자네 내면의 존재의 어떤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꺼려하지 말게나.(릴케, 'Letters to A Young Poet')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바뀌는 움직임은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쟁점이 되는 문제에 더 깊이 참여하는 쪽으로의 움직임입니다.
환대는 우선적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환대는 주인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라는 미묘한 권유가 아니라 손님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걱정과 염려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리지 않은 채로 놔 두지 못하고 또 명확하지 않은 상황을 명확하지 않은 채로 놔 두지 못한 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손님이라는 의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의식입니다.
가르침은 기독교의 영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물음들이 의식에까지 나올 수 있고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도록 두려움이 없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행동을 뜻합니다.
선생의 임무 가운데 두 가지 측면: 드러내 주는 것과 긍정하는 것
환대해주는 선생은 학생들에게 (학생들) 자신도 베풀 것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선하고 가치있는 것, 또는 새롱누 기여를 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은 긍정적으로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의사나 사회 복지사, 상담가, 목사와 같이 다른 이들을 도와 주는 직업을 통해서 동료 인간들에게 발돋움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되새겨야 할 점은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치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낯선 이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에 민감해지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게끔 해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베푸는 이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되며, 환자는 가르치고자 하는 선생이 됩니다. 선생이 자기 생각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준비하고 정리하는 동안 학습 내용을 익히듯이 환자도 자기 얘기를 듣고자 하는 치유자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얘기를 익힙니다.
수용과 대립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뗄 수 없는 두 면입니다. 이 두면은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대립이 없는 수용은 어느 누구도 섬기지 못하는 상냥한 중립성이 되고, 수용이 없는 대립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서운 공격성이 됩니다.
정신의 가난. 확실한 무지(docta ignorantia). 배움을 통해 터득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 하는 말과 그 상대방을 정말로 주의 깊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이 생각의 가난입니다.
마음의 가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체험을 우리에게 주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기도란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역설적인 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경험과는 상당히 달라서 우리는 그것을 부재라고 여기기가 아주 쉽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십자가 위에서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예수님의 외침)
무엇보다도 영적인 삶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삶입니다. 즉 수많은 좌절의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부재하신다는 생각을 깨달아 가는 고통스러운 시간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 한가운데로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최초의 표지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기대 속에서의 기다림을 통해서 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신비는 하나님의 부재를 깊이 의식하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팔을 뻗을 수 있으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언어입니다.
------------------------------------------------------
지난주 집에 내려가서 읽었던 책 중 하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책이었으나 이제서야 읽었다.
아마도 교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그동안 여러 책을 통해서 생각해 온 주제이었으나 원조는 바로 이 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도전하시는 부분...
또 중국 땅에서도 계속 내가 훈련받게 될 부분...
중국으로 out-reach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reach-out하라고 격려하신다.
올 한해 새로운 영적발돋움을 경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