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50절)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하자 나온 대답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니 예 아니오 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여호와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이들의 신앙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많은 신 중에 한분으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인지. 일단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연장선상에서 묵상을 해나간다.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이니(51절) 그렇게 하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내가 아니오 할 권리가 있음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말씀에 보이듯이 하나님을 진정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아니오는 커녕 예 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 말씀만 하옵소서 라고 했던 백부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향한 존중, 인정, 경외, 신뢰, 믿음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수없이 주저하고 거부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가부를 말할 수 없다는 고백과 삶을 곰곰히 묵상하고 연습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말씀묵상_구약/창세기2014. 10. 3.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