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잉여는 다른 이의 것
암3:9-4:3
큰 요란함과 학대함(9)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타락과 부패, 특히 기득권층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아스돗과 애굽을 증인으로 초대합니다. 이들의 큰 요란함으로 표현된 사치와 향락을 즐기면서, 학대, 포학, 겁탈을 당당하게 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악이 관영한 사마리아의 벧엘(종교)과 궁궐(정치)을 무너뜨리십니다. 특히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는 부유한 사마리아 여인들 역시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압제와 학대로 인해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잉여의 물질과 권리는 올바른 곳에 사용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른 이를 위해, 공적 유익을 위해 쓰이기 보다 개인의 사치와 향락에 쓰이기 쉽상이지요.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사치와 향락을 더 누리고자 학대와 겁탈에 열을 올리는 인간의 모습이 씁쓸합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은 이것을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어느 강연에서 행복은 소유 나누기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소유를 늘릴 수 없다면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요란한 삶을 소박한 삶으로 바꿀 때 행복의 기초가 세워집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한 학대가 아니라, 다른 이의 기쁨을 위한 나눔이 행복을 완성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집니다. 내 삶의 잉여는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