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이유가 극복되는 회복

암9:1-15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11절)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되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게 하신다. 자연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이 때 선민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똑같이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그 날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시키며, 성읍, 포도원, 과수원이 세워진다.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 돌아와 다시는 흩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성전에 있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 이것은 예배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출애굽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다른 민족의 이동과 같은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다. 죄 앞에서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구원, 안정, 특권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걸 맞는 책임과 삶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긴 심판의 말씀 끝에 회복의 말씀이 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8:2) 하셨지만, 결국 회복시켜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이시다.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 요나가 된 심정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렇게도 격렬하게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자들을 향해 심판을 전했던 아모스는 뭐가 되나? 회복 한 방이 이전의 모든 심판을 깨끗이 날려버리는가?

그렇지 않다. 회복은 심판을 무시하지 않는다. 물타기가 아니다. 종교와 일상의 분리,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자들의 사치와 향락, 약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극복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방향과 지침(김근주)'가 될 것이다. 공의와 정의의 일상이라는 제물이 제단에 올려지는 참된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소망하게 한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