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서재를 통해 본 나의 서재
나의 서재라 제목을 붙이지만 사실 아직 서재라고 할만한 책과 공간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함께 책장 네 개가 한 방에 있을 따름이다. 그 책장의 일부도 아이들의 동화책이 차지하고 있다. 목회자 치고는 책은 적은 편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이사가 잦은 부목사라는 점을 감안하고서도 그렇다.
책이 적은 이유가 있다. 목회를 하셨던 아버지는 책을 정말 많이 가지고 계셨다. 서재와 거실 그리고 안방의 벽까지도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덕택에 책의 중요성을 배우고,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배운 것은 큰 유익이다. 그러나 이사가 문제다. 이사 다닐 때 이 책을 묶고 나르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 그 때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꼭 필요한 책 이외에는 많이 사지 않으리라.’ 그래서 요즘도 서점에 가면 쉽게 책을 구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이 정말 필요한가? 반복해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꼭 묻는다.
그런데 이번에 ‘그 사람의 서재’를 읽으면서 내 생각의 수정을 요구받는다. 그동안 스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비교적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진정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정의가 달라졌다. 나는 그 정의에 포함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나의 얄팍한 자부심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이 나이에 걸맞는 독서와 사상을 갖지 못했음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독서에 대한 목마름은 더 커졌다.
16인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앞으로 한동안 나의 도서구매 리스트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그동안 구입했던 도서목록과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김기석 목사님의 한 토막 이야기 때문이다. 김목사님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도 변화되지 않는 이유를‘신앙적 전제들을 재확인하는데 그치는 책들을 읽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어어간다.
“가벼운 산행처럼 적당한 수준에서 우리를 육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지 않은 채 영혼을 환기하는 책에만 맛들이면 우리의 정신은 성장하지 않아요. 육체를 인내력의 한계에까지 밀어붙이는 험한 등산에 도전할 때라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이해력과 지성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책을 읽어야 영혼이 성장합니다. (중략) 그런 책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지만 그 절망의 심연에서 섬광과도 같은 빛 한 줄기를 만나는 기쁨은 그 모든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아요.”
이것은 나의 안일한 책읽기에 끼얹어지는 냉수이다. 이것을 생각하며 내 책장을 한번 둘러보았다. 훑어보니 꽂혀있는 책들은 대부분 나의 신앙과 생각을 지지해주고 확인해주는 책들이 대다수였다. 책은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 도끼이어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의 서재’는 나의 서재를 깨부수는 도끼와 같은 책이다. 나의 서재를 리모델링하는 책이다.
그 사람의 서재 - 복음과상황 엮음/새물결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