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때리고 싶다
한국의 글쟁이들이라. 이 책에 들어간 사람들은 얼마나 명예로운가. 그만큼 이 사람들의 글과 책이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그런데 개인적으로 대부분은 이전에 잘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것은 내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안 읽었다는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책을 보니 과학, 역사, 미술, 건축, 민속문화 등 전문분야를 다루기에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도 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현재 자기 분야에서 글쟁이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주목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술적이 아니라 대중성을 추구한 저술가들이다. 어렵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다가서도록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저술가의 길로 용기있게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다들 대박을 낸 것도 아니다. 저서의 총판매부수가 몇 십 만부, 몇 백 만부인 사람들도 있지만, 몇 천권에 머무른 저술가도 있다. 글쟁이의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다.
성실함과 글에 대한 열정. 글쟁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들이다. 기계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확보하고 정해진 시간동안 꾸준히 글을 쓴다. 또한 영감이 떠올라서 글을 쓰기보다는, 공부를 하면서 책을 쓴다. 공부하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도 책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격려로 들렸다. 또한 메모, 책구입, 자료수집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것들을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도 책이 된다는 조언은 설득력이 있었다.
책에 등장한 저술가 중에서 가장 대중성을 얻은 사람은 한비야이다. 그녀의 책은 판매부수를 다 합치면 200만부이고, 시간이 지나도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좌우, 남녀, 청장년 모두에게 보편성을 얻는 작가라는 것이 놀랍다. 사실 이 책에서도 한비야 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머리를 때리는 글이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글을 쓰자.’ 한비야가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일기장에 쓴 글인데,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이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감성적인가.
그러나 그런 글을 쓰기까지의 노력이 대단하다. 원고가 자기 맘에 들 때까지 수십번 퇴고를 해서 ‘교정지가 딸기밭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불바다가’ 된다. ‘입으로 읽어 거칠면 눈으로 읽어도 거칠다’는 지론도 마음에 새겨본다. 이렇게 퇴고하고 다듬다보니 자기 책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에서 일기와 메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새 책이 없다는 말에 ‘말하고 싶은 것이 목구멍까지 차서 도저히 토해내지 않고는 못 견딜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라는 대답은 가슴에 새겨야 할 명문이다.
머리와 심장의 물리적인 거리는 몇 십 센티미터이지만 실제로 가는 길은 매우 멀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앞에서 말을 하면서 늘 머리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떤 깨달음이나 새로운 시각은 있지만,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고나 할까. 머리를 때리는 말이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쟁이들에 표현에 의하면 내용을 토해내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의 깊이와 불바다가 되는 원고작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슴을 때리는 이야기를 모으고, 발견하고,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다른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삶이다.
한국의 글쟁이들 - 구본준 지음/한겨레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