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인문2016. 7. 7. 10:50

시인으로서의 설교자를 생각하며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서평

 

신대원 시절 설교학 수업시간에 추천도서로 월터 브루그만의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를 본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동의가 되는 책이어서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내용이 어려운 것인지,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읽기가 어려웠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만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설교에 있어서 활력과 은유와 직유, 스토리와 이미지가 풍부한, 신선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여러 가지 저항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참된 신앙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다시 집어들고 끝장을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는 시를 어떻게 써야할지 안내하는 책이다. 각 장의 내용과 분량이 감질맛 난다고나 할까. 아쉬운 듯 짧지만 그래도 충분히 여러 가지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에서는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시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다양한 시를 만나게 되는 덤을 얻게 된다. 시집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렇게나마 시와의 거리를 좁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시도 쓰려면 다독해야 한다. 저자는 한 줄을 읽기 전에 백 줄을 읽을 것을 이야기한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라는 표현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는 것이나,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히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많이 읽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백석의 시를 너무도 좋아해서, 백석의 시를 노트에 옮겨 적기까지 했다고 한다.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을 철저히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는 무엇을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쓰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떤 소재를 택하는 것보다 그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본 것,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쓰라고 권한다. 다시한번 글에 있어서 관찰과 시각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기존 시각의 상투성과 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자어, 형용사, 개념적인 언어를 과감히 삭제하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내용은 시인은 어떤 진실을 그리기 위해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는데 이것을 시적 허구라고 하였다. 이 시적 허구를 통해 시인은 상상력의 자유를 발휘하여 시를 쓰게 된다고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것은 성경 이해와 설교에 적용이 되었다. 성경도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면 성경의 저자들도 본문을 통해 사실 보다는 진실을 전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라는 지점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다소 위험한 수위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설교 또한 사실을 나열하기 보다 진실을 회중의 마음에 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이 집중되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는 앞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글과 책에 더 마음이 가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면야 바랄 것이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한다 할지라도 언어의 상투성과 관념성을 꿰뚫고 진실을 전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그런 설교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10점
안도현 지음/한겨레출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