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사람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16절),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23절)

후세는 급히 다윗에게 아히도벨의 계략을 전하면서, 빨리 요단을 건너가게 합니다. 자기 계략이 무산된 것을 안 아히도벨은 고향에 돌아가 집안을 정리하고 목숨을 끊습니다. 

두 사람이 계속 대비되어 등장합니다. 최고의 지략가이자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지도자인 압살롬을 섬기는 아히도벨. 지략에 있어서 아히도벨보다는 못하지만 다윗을 신실하게 섬기는 후새. 팽팽했던 대결은 이제 후새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집니다.

심장 쫄깃해지는 위기를 넘고 후새는 다윗의 살 길을 내줍니다. 그러고보면 종종 다윗은 이렇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 길을 얻습니다. 사울왕의 살해의 위협에 미갈과 요나단의 도움을 받고, 분노에 차 나발을 죽이려고 달려갈 때 아비가일의 도움을 받습니다. 간음과 살인의 죄를 범한 뒤에도 나단의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우리 주변의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서 받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살 길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이들의 살 길을 내어주는 그런 존재이고 싶습니다.

자신의 계략이 실패한 것을 알고 고향으로 와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목숨을 끊은 아히도벨. 너무 지혜롭습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되어갈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행한 일들입니다. 반역에 실패하게 될 압살롬을 떠나, 다시 왕위로 돌아올 다윗에게 무릎꿇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굳은 절개가 엿보입니다. 그 탁월한 지혜와 절개가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데 쓰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과 죄로 인한 절망의 자리에서라도 겸손히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이 더 부각됩니다. 자신 자신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실패의 결과까지 책임지려는 인간적 고결함보다는, 오점투성이 자신의 존재를 겸허히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회복을 구하는 것이 낫겠다 싶습니다.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 어떠함을 알기에 절망의 자리에서라도 회복을 구하기 원합니다. 예수의 생명 안에 늘 거하여 그것을 흘러넘치길 원합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