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구약/사무엘하'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8.08.28 왕하8:16-29
  2. 2016.09.01 삼하24:18-25
  3. 2016.08.30 삼하24:1-17
  4. 2016.08.28 삼하 23:1-7
  5. 2016.08.28 삼하23:8-17
  6. 2016.08.25 삼하22:21-28
  7. 2016.08.24 삼하22:1-20
  8. 2016.08.23 삼하20:14-26

*오늘의 말씀 : 왕하8:16-29

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왕하8:17-19)


*오늘의 묵상

유다왕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했는데 이것은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이 결혼운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가져왔던 바알 숭배를 유다에도 전파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로인해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나라가 약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라의 멸망을 막고 있지만,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합니까?


*오늘의 기도

악한 아합의 길로 걸어가는 여호람과 아하시야 때 나라가 약화되는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기보다 정략 결혼이라는 인간적인 방법을 취한 것을 바라봅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마음의 동기를 바르게 하시며, 그것을 이루기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취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주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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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아니라 샬롬의 사람으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25절)

하나님은 이 점을 문제시하시고 이스라엘을 보다 더 고상한 목적을 위한 나라로 변화시키려고 하신다. 다윗을 칼의 사람이 아니라 기도와 간구의 사람, 칼로 살아남은 이력을 뉘우치고 중보 기도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내는 영적 지도자로 변화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사무엘하 24장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범적인 회개의 사람, 죄로 인해 초래된 심판을 중지시키는 제사장적 인물, 그리고 백성들에게 내린 재앙을 그치게 기도하는 중보자로 변화되었다(김회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나라가 칼을 빼든 담대한 용사 130만명의 나라가 아니라, 아리우나 타작마당에서 속죄와 화목의 제사를 두리는 소박한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김회권).

앞부분의 인구조사를 상무적인 나라을 세우려는 의도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의 제사를 중보와 제사장 역할로 보는 관점이 참신하고도 은혜가 된다. 전쟁이 아니라 샬롬의 사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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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뢰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1절)

24장은 다윗의 인구조사라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성전 건축 준비 일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다. 또한 역대기는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켰다고 한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죄악된 성향을 심판하기 위한 예방적 심판 행위를 정당화하는 일종의 신학적 표현 방식(김회권)으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을 비하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타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인구조사에 분노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배적인 분위기, 성향, 기풍에 분노하셨는데, 그것은 용사 집착증, 무력 중심, 칼 문화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윗의 죄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죄이다(김회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진짜 싸움이다.

최근 목회와 관련해서 자신감을 잃었다.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정신도 그렇고, 무엇보다 성향이 앞서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 자신을 봐도 목회하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교만도 문제이지만, 자신감 상실도 같은 맥락의 죄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깨어있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싸움에서 지지말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할 수 있다.

결국 나단을 통해 세 가지 심판 중 전염병의 심판을 선택하게 되면서 7만명의 백성이 죽게 된다. 왕의 범죄는 국가적 재난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지도자의 판단, 정책, 그리고 생각은 재앙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지도자가 된 사람은 자신들의 정책 결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김회권).

지도자,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나라, 교회를 바라봐도 그렇고, 가정의 지도자인 부모의 역할을 봐도 그렇다. 나라와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나 또한 바른 지도자로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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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한 삶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1절)


본문에서는 다윗을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신약으로 볼 때 성령충만한 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삶을 삽니다.

또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선한 뜻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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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된 구성원, 겸허한 리더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8절)

다윗의 전쟁에 함께 하여 승리를 가져온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먼저는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라고 하는 최고의 삼인이 탁월한 행적이 나열되고, 뒤이어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의 무용담이 이어집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떠온 우물물을 마시지 않는 다윗의 이기적이지 않은 모습을 봅니다.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라는 찬양이 앞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승리는 다윗 한사람의 탁월함이 아니라 많은 중간지도자들과 함께 이룬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한 사람의 탁월함보다는 여러 사람의 하나됨과 헌신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의 신실함을 위한 기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윗이 당시 블레셋의 요새인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블레셋 진영을 뚫고 가서 우물 물을 떠옵니다. 가히 어벤져스급의 초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우물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립니다. 자신의 유익과 권력을 위해 이 일을 하지 않았음을 천명합니다. 세 사람의 생명의 고귀함을 언급합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이들의 헌신과 수고, 겸허히 함께 하는 이들을 인정하는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곳에 이런 일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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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28절)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공의와 손의 깨끗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를 따라 상을 주시고 갚아주신다고 한다. 바로 앞에서 간음과 살인으로 인한 피바람부는 반역과 암투가 펼쳐졌는데 말이다. 이것은 본문을 다윗 통치 초기의 본문으로 이해하거나, 특정 인간 다윗이 아니라 공과 의를 행하는 개인 다윗을 구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김회권).

23절 이후로도 개인의 바른 삶에 따라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는 것으로 이신칭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신칭의에서 믿음을 사람의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김회권). 공과 의를 따르는 삶이 구원의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공과 의를 따라 살 능력과 은사를 선사받는다는 설명이다.

26절 이후도 비슷한 흐름이다. 마치 하나님은 거울과 같다. 자비한자에게 자비를, 사악한 자에게는 거스르심을 보이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신다. 인과응보의 하나님이시다. 인생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중요한 원리임은 분명하다. 지금 당장 이것이 실현되지는 않지만 결국 이것이 이루어짐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믿음으로 곤고한 자리에 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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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통한 구원, 구원의 기쁨을 찬양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그 날에(1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와 구원에 감사해 찬양의 시를 올려드린다. 지난 모든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기도에 응답하시며 악으로부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본문은 다윗의 승전가로 다윗 왕위 획득과 주변 족속들과의 지배와 정복을 하나님의 지상 통치의 확장으로 본다. 자신의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라는 말이다. 전반부에서는 다윗 자신의 개인 구원사를, 후반부에서는 그것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다룬다. 여기에서 보편적인 원칙이 드러나는데, 하나님께서는 공과 의를 실행하는 자들의 기도와 간구을 들으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김회권).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승리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 하나님의 승리로 보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인간 개인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치환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강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자각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은혜를 아는 자의 마땅히 할 바이다. 자신의 삶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그 의미를 묻는 자라면, 또한 자신이 누리는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

또한 하나님은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우리 기도의 시작점이 된다. 그러나 기도는 더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를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공과 의를 실행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자기보다 더 강한 악의 세력에 눌려 고통받는 자의 신음에 응답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과 의를 무시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공의가 무시되어 고통받는 자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내게 재앙으로 닥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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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은 삼하16-20장 전체를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가 잘 드러난다고 보았다. 엄밀하고 궁극적인 의미에서 죄사함은 죄를 영원히 짓지 않게 되는 상태로 변화되는 은혜다. 죄사함의 궁극적인 은혜는 그 사함받은 죄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는 범치 않는 은혜이다.

저신의 고통으로 좌을 속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런 엄청난 고통으로 좌르루저항하루힘이 형성되어 같은 죄를 지을 기운을 꺾는다는 말이다.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범하지 않는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그런 죄사함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그는 죄와 결별하는 고통스런 이유식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이 단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동일한 죄를 다시는 범할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그 죄를 혐오하도록 유도하신다. 다윗은 죄와 일생 동안 싸워 아김을 쌓아 감으로써 죄사함의 궁극적 은혜에 이르기 원했던 것이다.

나의 게으름, 음란, 중독, 간음에도 진정한 죄사함의 은혜가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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