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부모의 사랑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33절)
압살롬이 죽자 사독의 아들 아히마하스는 이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고 상을 얻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요압을 이것으로 상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제지하지만 끝내 구스 사람에 앞서 소식을 전한다. 두 사람에게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다.
자신에게 반역하여 나라를 세우고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했던 아들이 죽었다. 이 슬프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씁쓸하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기회로 삼는 자들의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강심장이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쉽게 다른 이들의 아픔에 무감각하게 살면서 나의 안일만을 구하는지를 생각할 때 나 또한 이 어리석음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반역자 아들의 죽음에 통곡하는 아버지 다윗. 지난 역사에서 자신의 적이라면 부모자식간에도 살인을 서슴지않는 무자비한 권력자들을 보게 된다. 이에 비하면 다윗은 참 인간적이다. 어쩌면 자신이 범한 죄의 결과로 이렇게 아들과 원수되어 아들을 죽게만든 본인의 잘못을 가슴아파 하는지도 모른다(김회권). 앞서 언급한 무자비한 권력자들에 비해 본인의 자리와 생명이 위태할 때도 인간적인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다윗은 차라리 따뜻하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이것이야말로 부모의 마음이다.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의 죄책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않은가. 반역자를 슬퍼하기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그 자녀의 생명을 위한 부모의 헌신과 사랑은 감동이다. 그저 신비롭다. 더불어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아침이다.
또한 무덤에 묻지 못하고 마음에 자녀들을 묻은 부모들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서 뭐든 하겠다는 그 절박하고도 외로운 마음에, 그분들을 대신하여 죽고자 하시는 참된 부모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함께 하는 신비로운 오늘 하루이길.
말씀묵상_구약/사무엘하2016. 8. 16. 0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