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탕평책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22절)
본문에서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속한 유다 지파가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한다. 요단을 건너면서 이전에 저주했던 시므이를 만나 그에게 용서를 베푼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자기 지파인 유다 지파 역시 압살롬과 함께 반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궁에 주도권을 갖도록 일을 처리하는 다윗을 본다. 보통 혈연, 지연, 인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냉혹한 정치적인 세계에서 믿을만한 자기 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진짜 혈연이고 가족이라고 하셨는데. 믿음의 공동체가 피보다 더 진할 수 있기를.
이후 다윗은 요압이 아니라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았다. 압살롬 반역의 일등공신인 요압의 교체는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해 오는 요압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로 교체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압살롬을 슬퍼하고 있을 때 '요압의 위협적인 언사에서 심한 모욕'을 느꼈을 법하다. 또한 '압살롬의 반역에 참가한 북 이스라엘 지파들의 여러가지 염려를 불식 시키기 위한 정치적 제스쳐'로 이해할 수 있다(김회권). 결정적으로 요압과 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피난을 갈 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천 명을 데리고 다윗 앞에 나온다. 베냐민의 유력자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시므이는 현실 적응에 매우 빠르다. 이런 시므이의 약삭빠름에 아비새가 화를 내며 죽이려고 한다. 그러자 다윗은 이것을 말린다. 북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의 유력자인 시므이를 죽인다면 자신이 어찌 다시 이스라엘 지파의 왕으로 인정받겠느냐는 것이다(김회권). 이스라엘 전체, 즉 북이스라엘까지 함께 다스리려는 다윗의 생각이 드러난다.
이렇게 보면 반대자들을 대하는 다윗의 반응이 눈에 띈다. 반대자들을 심판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용납하고 가까이 한다. 탕평책이다. 물론 저주한 시므이를 완전히 용서한 것 같지는 않다. 후에 솔로몬에게 그냥 살려두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나라를 다스리고 이끌기 위해서는 반대자들을 늘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본다. 나의 반대자. 나의 가시이고 나의 상처유발자이지만, 품고가야 할 대상이다. 그렇게 위태롭게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렇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나라의 진주를 만들어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