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구약/욥기'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4.07.29 욥기 17장
  2. 2014.07.29 욥기 16장
  3. 2014.07.10 욥기 1장
말씀묵상_구약/욥기2014. 7. 29. 12:25

10절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욥의 친구들은 지혜의 대표자들로서 욥에게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욥은 지혜자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상대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가 주변에 없다는 토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자는 많은 지식을 가진 자가 아니다. 지혜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자의 삶 속에 있는 의로움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이다. 더 나아가서 기존의 전통과 쳬계와 사상을 벗어나는 사건과 경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18절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7장 곳곳에서 만나는 절망과 죽음의 이미지와 단어.

계획이 무너지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몸이 병들어 약해지고, 남들이 나를 비난하고 공격할 때

우리는 절망한다.

죽음을 생각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지 않던가.

희망을 말하고 회복을 빨리 말하고 찾기 전에 좀더 욥과 함께 이 시간을 견뎌보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욥기2014. 7. 29. 12:17

1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5절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 근심을 풀었으리라

위로자는 상대를 강하게 하고 근심을 풀어주는 자이다. 위로의 자리에서 상대의 문제점을 찾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읽어주는 일일 중요하다.


6-14절 그가 나를 치고

'주께서 나를 ~하게 하시고'의 반복.

욥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괴롭게 하고 공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외치셨다.

실제는 사단이 그를 괴롭게 하였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셨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다. 최근 총리 후보자의 일제 침략은  하나님의 뜻이라 다른 발언이 논란이 되었는데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15-17절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욥은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죄가 없음을 말한다.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고문 속에서 결백을 주장하다가 고통을 못 이겨 죄을 지었다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과연 의롭다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친구의 공격이 있었는데 이 논리 앞에 누가 감히 의롭다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여기에는 의로운 자의 고난이라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여러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믿음에 붙어 있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기 원하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결국에는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가 묻어있다.


19절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데 계시니라

21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6-14절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격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욥은 하나님만이 증인, 중보자, 중재자가 되어주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불평과 하소연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분만이 나의 희망이라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욥기2014. 7. 10. 18:27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9)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 8)였다. 그런 그에게 자녀와 소유의 복은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이런 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조건과 이유를 제거해보자는 것이 사단의 의도이고, 그렇게되면 믿음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사단의 결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조건이나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다 제거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혹은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돌보신다고 느끼는 조건과 이유가 사라지는 때이다. 너무나 힘겨운 순간을 보내지만 결국 오직 하나님만을 직면하고 하나님 한분만이 나의 존재의 이유와 조건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빚어진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나요 라는 질문에 이전에는 이래서 저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한 자는 대답이 달라질 것 같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냐구요? 그냥.
목회자로써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내면에는 목회에 있어서 성취감과 사람들의 인정을 매개체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것을 끝임없이 발견하게 된다. 과연 나는 이런 까닭없이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고난은 이 질문을 던지며 나에게 찾아올 것 같다.

 

욥이...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1:20)

욥은 하루만에 자녀와 재산 즉 모든 것을 잃었다. 이 땅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충격과 상처를 한꺼번에 다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너무나 기이하다. 그 상황에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말씀에 의하면 주시기도 하고 취하시기도 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욥은 사건 직후에 이렇게 할 수 있었지만 아마도 현실에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될 때 신앙인의 삶도 정상궤도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욥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의 경건한 삶의 습관이 그렇게 인도했을 것이다. 고난 중에도 이전에 해오던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고난 중에서도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삶이 무너질 때 우리는 범죄와 원망을 저지르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범죄와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다. 평상시는 내가 예배를 붙들었다면 고난의 때는 예배가 나를 붙들어 줄 것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