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구약/룻기'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5.12.25 룻4:7-22
  2. 2015.12.23 룻3:1-13
  3. 2015.12.22 룻2:14-23
  4. 2015.12.21 룻2:1-13
  5. 2015.12.20 룻1:15-22
  6. 2015.12.19 룻1:1-14
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5. 23:42
하나님 나라에 잇대다

룻4:7-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22절)

보아스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룻을 아내삼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책임을 감당한다. 결국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아들 오벳이 탄생하였는데, 그는 이새의 아버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 가문,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이 되는 영광을 누린다. 하나님의 헤세드 아래, 인간의 사소해보이는 헤세드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나라에 연결되게 한다. 지지고 볶는 우리네 인생을 뛰어넘는 거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돈으로 안된다. 힘으로 안된다. 지식도 안된다. 헤세드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잇댄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3. 11:25

말씀을 낳자.

룻3:1-13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5절)

나오미는 룻에게 타작마당에 들어가 보아스의 발치 아래 누우라고 말한다. 친족인 보아스로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로 위험한 계획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고, 의도적인 접근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룻의 대답은 인상적이다. 어머니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전적인 순종이다. 결국 룻의 몸을 통해 다윗의 가계가 이어진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천사의 수태고지에 대한 마리아의 대답이다. 룻의 말과 오버랩된다.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임신하게 될 것이라는 황당함과 약혼자에 의한 간음고발의 위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천사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예로 대답했다. 말씀에 대한 순종. 그녀를 통해 다윗의 자손,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가 태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헤세드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겉으로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로 드러나지만 말이다. 말씀을 행하고,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말씀과 사랑에 빠지자. 말씀을 잉태하자. 말씀을 낳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2. 17:24

먹방은 함께

룻2:14-23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14절)

자신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허락했던 보아스는 식사시간이 되자 룻에게 함께 먹을 것을 권한다. 먹을 것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와서 함께 먹자고 초대한다. 이방인, 모압사람, 여성, 과부, 낯선 사람 등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식탁에 초청한다. 함께 먹는다. 이것이 헤세드이다.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헤세드의 공동체로서 함께 먹는다. 함께 말씀을 먹고, 음식을 먹는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함께 먹는다. 냉장고를 열어보자. 먹방은 함께 찍자.


보리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23절)

보아스는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줍도록 계속해서 은혜를 베푼다. 하루,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은혜는 아구를 채우고도 넘친다.특히 이삭줍기는 레위기,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씀이다.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보아스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삶으로 드러낸다. 어두움 가운데 더욱 밝히 드러나는 빛과 같다. 인심 박한 이 어두운 시대에 넉넉한 은혜로 빛을 비추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1. 11:46

헤세드는 헤세드를 낳고

룻2:1-13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은혜를 기대
룻은 생계를 위해 밭으로 나아가며 나오미에게 이야기한다. 누군가 은혜를 베풀면 그 밭에 이삭을 줍겠다고 말한다. 내 노력, 내 고생이 다가 아닙니다.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섭리
룻은 우연히 보아스에 속한 밭에 이르렀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밭에 머물렀습니다. 우연이고 그냥 일어난 일들 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것을 읽어내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친절
보아스는 사환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줍니다. 또한 이것은 처음 본 사람이자 이방 여인인 룻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물어보게 합니다. 또한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안전을 지켜주며, 물을 마시게 합니다. 친절함은 복을 빌어줌이며, 관심이고, 묻는 것입니다. 보호하고 싶고,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어지는 헤세드
룻이 왜 이런 은혜를 베푸는지 묻자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에게 행한 일이며, 먼 이방 땅까지 따라와 섬기는 모습을 칭찬합니다. 룻이 행한 헤세드가 보아스의 헤세드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헤세드가 함께하시길 간구합니다. 한 사람의 헤세드는 다른 이의 헤세드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헤세드에 하나님의 헤세드가 일하십니다. 헤세드는 헤세드를 낳습니다.

헤세드의 하루를 살 수 있기를. 작은 헤세드 하나 행하기를. 누군가의 헤세드에 감동하며 힘을 실어주는 헤세드를 실천하기를. 하나님의 헤세드를 간절히 빌어주는 헤세드의 기도를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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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20. 14:41

함께 돌아가자

룻1:15-22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18절)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강권했지만 룻은 계속해서 따른다. 그녀는 말한다. 나도 가고, 나도 머물겠습니다. 나도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나도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죽겠습니다. 나도, 나도, 나도. '함께'의 정신이다. 상대의 일을 나의 일로, 상대방의 삶을 나의 삶으로 품는 마음이다. 혼자여야 가볍고, 혼자일 때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함께함에 회복이 있고, 함께 있을 때 살 수 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온다.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괴롭게 하셨다고 말한다. 풍족하게 나갔다가 텅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고백한다. 그 고생과 슬픔이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으랴. 그러나 이렇게 볼 때 비게 된 것이 은혜다. 돌아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탕자를 본다. 풍족하게 나갔다가 다 잃고 굶주릴 때 아버지 집을 생각한 그사람 말이다. 텅 빔과 가난함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다. '상처가 나를 구원한다.'

힘들다. 어렵다. 슬프다. 답답하다. 내 모습이, 환경이, 주변 사람이, 이 땅이, 나의 미래가 그렇다. 그러니 함께 있자. 어려울수록 서로를 붙들자. 함께 있되 이 상한 심령을 가지고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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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_구약/룻기2015. 12. 19. 14:33

마땅한 것을 넘어서기

룻1:1-14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지독한 상실과 슬픔을 경험한다. 약속을 붙들지 않고 양식을 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나오미에게, 그녀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저들을 돌보시고 양식을 허락하신다. 상실과 슬픔에서 채움과 기쁨으로의 반전은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생의 운동장이다. 놀이터이다. 넘어지고 깨지고 다쳐도 그 안에서 우리는 자라고 성숙한다.

오르바와 룻은 떠나라는 권면에도 다시한번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든다. 그러나 나오미의 간곡한 부탁에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난다. 오르바는 그정도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땅한 일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비해 룻은 나오미를 붙좇는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주연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헤세드는 마땅히 할 바를 넘어서는 것이다.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헌신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지게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붙좇자. 그 은혜와 사랑을 끈질기게 붙잡고 따라가리라.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에 만족하지 않겠다. 내 할만큼 했다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헤세드를 붙좇을 때 나도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이 감독이신 하나님 나라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추가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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