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한손에는 신문'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1.09.01 고전 다시 읽기/노자 <도덕경>
  2. 2011.09.01 너에게 묻는다
  3. 2011.09.01 기다림
  4. 2011.09.01 그다지 다니지 않은 길/스캇 펙
  5. 2011.09.01 내가 한 사람을 사랑할 때는/ 최석우
  6. 2011.09.01 시간의 소중함
  7. 2011.09.01 변화
  8. 2011.09.01 진정한 비극

고전 다시읽기/노자 <도덕경>

 

최근 <왕의 남자>로 1천만관객을 돌파한 이준익 감독의 작품 가운데에 <황산벌>(2003)이 있다. 신라와 백제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물로 알려져 있지만, <왕의 남자>만큼이나 <황산벌>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나는 그 밑에 노자철학이 깔려있는 것으로 ‘읽었다.’ 노자의 눈으로 이 영화를 관찰할 때 주목할 부분은 계백과 그 주변인물들이다. 황산벌 결전에 앞서 계백(박중훈 분)은 처자식을 죽인다. 그가 가족을 죽이면서까지 얻고자한 것은 가문의 영예, 즉 ‘이름’이다. 한데 죽음을 앞둔 그의 처가 내뱉은 말, “호랭이는 가죽 땜시 죽고, 사람은 이름 땜시 죽어, 인간아!”라는 일갈은 이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내준다. 이름·명예·충성 등 세속적 가치의 허망함과 그것에 집착하는 삶의 허무함이 그것이다. 그 곁에 노자가 앉아서 계백의 처를 응원한다. “이름과 몸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해?”(名與身孰親. <도덕경>, 제44장) 이 영화의 주제어는 단연 ‘거시기’다. ‘거시기’란 뭔가 특칭할 수 없는 것에 붙이는 전라도 사투리인데, 노자식으로 번역하면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 즉 무명(無名)이다. <도덕경>에서 무명은 진리의 표상이다. “천지자연이 모두 이 무명에서 시작한다”(無名, 天地之始. 제1장)라거나, “진리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진리가 깨어질 때에야 이름이 생겨난다.”(제32장)는 주장에서 그 뜻이 명료하다. 영화 속에서 신라군은 백제군의 암호로 오해한 이 ‘거시기’의 정체를 찾아서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황산벌>이 코믹영화로 여겨지는 부분이 여기다. 하지만 이 대목은 참된 진실은 말로 표현되지 않으며, 그 형언할 수 없는 무명의 세계를 개념, 즉 유명(有名)으로 포박하려는 시도는 허망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 ‘거시기’는 ‘이름 없는 사람들’(민중)을 상징한다. ‘거시기’는 계백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이름 없는 병사’(이문식 분)의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최후에 다다른 계백은, “지금쯤 우리 엄니는 모 심느라고 고생하실 것인디”라며 한탄하는 ‘거시기’를 도망가도록 만든다. 계백은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뭔가 하나라도 남기고 죽어야 할 것인데, 나는 ‘거시기’ 자네를 남기겠네.” 처음엔 이름(有名)을 얻기 위해 처자식을 죽였던 계백이 끝내는 ‘거시기’, 즉 이름없음(無名)을 남기고 죽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황산벌>은 이름으로 상징되는 욕망에의 집착과 그로부터의 각성, 그리고 탈속의 행로를 그린 철학 영화다. 그렇다면 노자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있다. 돈·지위·숫자에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를 키들거리며 조롱하고 있다. 등 뒤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말이다.

 

황산벌 ‘거시기’ 노자철학

 

<도덕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5백년 전쯤 살았다는 노담(老聃) 혹은 이름모를 어떤 ‘늙은이’가 자연으로 숨어들기 직전에 남겼다는 짧은 경구들로 이뤄진 책이다. 총 81개의 구절로 이뤄진 <도덕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은 도(道), 즉 진리의 존재론에 대한 논의들이, 뒷부분은 덕(德), 즉 도의 형성과 운용에 대한 지침들이 실려 있다. 다 합쳐야 기껏 5천자 남짓이니 책이라고 하기에도 쑥스러울 정도지만, 그것이 터뜨리는 폭발력은 대단하다. 노자는 그 첫 마디를 “진리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참된 진리가 아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제1장)라고 전제하면서 시작한다. 진리는 말 너머에, 소유의 바깥에 있다, 그러니 말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순간 진리는 사라진다는 뜻이 되겠다.

 

‘있음’은 ‘없음’ 위에 존재하는 것

 

하면, <도덕경> 속의 말들은 무엇인고? 이 질문에 노자는 비죽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리라. ‘그렇게나 말이다.’ 라면서. <도덕경>은 최치원이 자연 속으로 스며들기 직전, 가야산 홍류동에 벗어놓았다는 신발짝이요, 폐사지에 남아있는 부도탑과 같다. 진리를 얻은 한 인간이 자연으로 접어드는(물아일체) 최후의 순간, 인간세계에 남긴 ‘측은지심’의 흔적이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인위와 자연이 만나는 접점에 <도덕경>이 있다. 노자는 이 세계가 겹으로 이뤄져있음을 퉁겨준다. 눈에 보이는 현상계의 바탕에 ‘거시기’의 세계, 즉 ‘없음의 세계’(無)를 유념할 것을 촉구한다. 세계는 유명과 무명, 아름다움과 추함, 밝음과 어둠, 높음과 낮음, 나쁜 것과 착한 것 등등의 짝으로 이뤄져 있다. 아니 실은, ‘있음’이란 ‘없음’ 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남성은 여성의 배 속에서 나온 것임을, 또 어둠은 밝음의 바탕색임을, 그리고 강함은 약한 것이 굳어버린 찌꺼기임을 깨우치기를 바란다. 하여 그는 특별히 여리고 어린 것에, 어둡고 낮은 곳에 주목하길 주문한다. 물론 강하고 힘세며, 밝고 높은 곳이 ‘나쁘다’거나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네 ‘욕망의 문’(눈과 귀)이 남성과 강함, 높음과 햇살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 바탕에 존재하는 ‘몰가치들’, 이를테면 여성과 연약함, 계곡과 어둠의 가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균형 잡힌 온전한 삶을 재구성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덕경>의 공능은 ‘질문하기’ 또는 ‘낯설게 만들기’에 있다.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지금 우리네 삶에 주름을 잡아, 상식의 바탕에 똬리를 튼 몰상식과, 질서라고 믿는 것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질서, 사실의 근원에 존재하는 왜곡의 현장을 직대면하도록 이끈다. 질서·합리·상식이란 실은 무질서·비합리·몰상식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천둥처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도덕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욕망과 바람에 휘둘려 눈을 주지 못했던, 일상의 비상한 기원을 통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데 <도덕경>은 산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만일 불교의 거처가 깊은 산이요, 유교의 터전이 도회지란다면 노자가 머무는 곳은 비산비야의 근교다. 노자는 불교와 유교의 사이쯤에 위치한다. 근교에서 도회지를 향해 충고하는 것이 <도덕경>이다.) 노자는 결코 문명으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는다. 다만 문명을 빗겨서 바라볼 때에야 삶의 진리를 제대로 알고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따르면 낯설고 불편한 겹(무명/유명)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지도자 자격이 있다. 노자는 대중을 ‘겹의 진리’로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도덕경> 후반부에는 특별히 ‘노자 정치학’이라고 할까, 혹은 ‘리더십 론’이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우리 귀에 익은 “큰 나라 다스림은 작은 물고기를 굽듯 조심스러이 해야 한다”든지, “나라는 작게, 백성은 적게”(小國寡民)와 같은 대목들이 거기 있다. 노자의 리더십은 이를테면 ‘쓰레받기’에 비유할 만하다. 지도자란 가장 낮은 곳에 거처하면서 힘들고 더러운 일을 도맡고,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으면서 묵묵히 제 일을 처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일 밑바닥에 거처하는 ‘쓰레받기 리더십’은 실패는 제 자신 탓으로, 성공은 아랫사람들 덕택으로 돌리게 마련이다. 여기서 피어나는 꽃송이가 덕(德)이다. 묘한 것은 ‘덕은 억지로 하지 않는데도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아이러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덕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또 분발하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노자의 리더십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나를 숙이라’가 될 것이다.

 

높은 산을 보지 말고 발밑을 보라

 

▲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요컨대 <도덕경>은 낮은 곳에 거처하면서 ‘덕’을 닦아, 자연의 진리인 ‘도’로 나아가는 길을 밝힌 책이다. (옛날 판본 가운데는 후반부에 속하는 ‘덕경’을 전반부인 ‘도경’의 앞에 놓은 것들도 있는데, 이런 점에 주의한 편집이라고 하겠다.) 노자는 높은 산을 바라보는 데 이골 난 우리 눈길을 발밑으로 돌리길 권한다. 나아가 진리는 산 정상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과 강, 그리고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흐름 속에 있음을 통찰하길 촉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를 자문하길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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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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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회실습 수업시간 중 최일도 목사님께서 마지막에 인용하셨던 시...

자신을 불살라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삶...

평생 나에게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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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랑도 첫술에 배가 부르길 바랄 수는 없다.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녀가 내게 다가올 때까지, 
그녀가 마음을 열 때까지, 그리고 그녀가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서야 한다.
우리들의 사랑이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상처받는 일이 더 많은 것은
성급한 사랑의 열정이 칼과 가시가 되어 우리들의 사랑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다시 기다리는 것! 
그러다 그 기다림마저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이다. 


- 고도원의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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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발전에 대한 비전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의지를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그들은 훈련 없이 성도가 되는 지름길을 발견하기를 원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종 그것을 얻기 위해 단순히 성인들의 외면적인 삶을 모방하여 광야로 들어가거나 목수가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모방만으로 자신이 실제로 성인이나 선지자가 되었다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처음부터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괴로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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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진 것이나 보여 지는 것만을 보게 하지 마시고
그의 숨겨진 영혼의 무늬와 순수함을 살피게 하소서..

사랑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그의 모자람까지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주시고

지나치게 확인하고 나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그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도 살아가야 할 그의 인생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가 나를 실망시키더라도 아픈 말로 상처 주며 
비난하지 않게 하시고

돌아서야 한다고 그를 사랑했던 것을 부인하거나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내 이기적인 자존심과 나약함으로 
그의 가슴에 거짓 마음을 남기지 않게 하소서..

사랑은 나로 인해 그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사랑은 나로 인해 그가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는 것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그를 아름답게 할 수 없는 것이거나
그의 희생을 필요로 할 때에는
내 안의 애착과 그리움을 드러내 그를 아프게 하지 마시고
단지 아름다운 미소와 축복의 말로만 그를 보낼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더 이상 그가 내 눈 앞의 세상에서 보이지 않더라도
조용한 침묵 속에서 당신께서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와 내가 주고받은 영혼의 대화들 속에 함께 하며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당신 부르심으로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한 사람을 사랑했었음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내주셨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떠나가게 하소서............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일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한 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라.
한 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잡지 편집장에게 물오보라.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아이가 여섯 명이나 딸린 일일 노동자에게 물어보라.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약속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 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 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라.
천 분의 일 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사람에게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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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어리고 자유로웠을 때,
나의 상상력에 끝이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었다.

나이가 들고 뭔가를 알아가면서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야를 약간 좁히기로 하고,
우리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이제는 마지막으로,
절박한 기분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내 가족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이럴수가. 그것도 되지 않는다.

이제 죽어가는 침대에 누운 나는 
깨달았다.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다.) 그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러면
내 가족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가족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내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테고,
누가 아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을테지.

-어느 신부님


☞변화는 안에서 밖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비극과 같이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에서 발췌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진정한 비극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자의 비극이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펼쳐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습 그래도 우뚝 서 보지도 못한 자의 비극 말이다.
-Arnold Ben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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