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신약/마태복음'에 해당되는 글 149건

  1. 2011.08.16 마18:1-14 어린 아이들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자. 오늘 하루 손, 발, 눈의 범죄함으로 누군가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2. 2011.08.15 마17:14-27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난과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나의 안녕과 안정감으로 인해 근심하지 않고 순종하게 하소서. #생명의삶
  3. 2011.08.14 마 17:1-13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예수님. 나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시는 곳으로 가자. #생명의삶
  4. 2011.08.13 마16:21-28 '이 때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를 보게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미래와 존재감보다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자. #생명의삶
  5. 2011.08.12 마16:13-20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오늘 하루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어떻게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주어진 일을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할 것이며, 맡겨진 성도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 섬겨야 할 것이다. #생명의삶
  6. 2011.08.11 마16:1-12 표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하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교훈을 조심하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르침, 나의 욕망을 채우며 나의 명예를 세우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7. 2011.08.09 마5:21-28 믿음의 주가 되신 예수님, 수많은 변수와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가 있는 목회 현장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목회를 하고자 하는 소원을 들어주소서. 시시때때로 의심과 두려움이 들지만 더 간절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생명의삶
  8. 2011.08.08 마15:1-20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겸손, 순수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아이들 속에도 악함이 있음을 볼 때 성품적인 측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 의지하는 존재로서의 어린아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존재로 살아갈 때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질서와 가치를 뒤집어엎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 그 질서와 가치를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자.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실족케 하서나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손, 발, 눈으로 죄를 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결국 나의 범죄는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업신여기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나의 손, 발, 눈이 범죄하지 않기를. 그리고 누군가를 실족시키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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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간질병자 소년을 고쳐주시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시며,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너의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말씀하시면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이 옮겨지며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은 결국 믿음이 없다는 말씀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이 듣고 많이 말하게 되는 믿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믿음이 적거나 많다는 것은 무엇이며, 과연 믿음이 많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맞는가 라는 질문을 새삼 던져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믿음은 믿는 대상이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굳게 확신하며 얼마나 지속적으로 붙드는가로 이해되어진다. 신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행함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두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 이야기를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 나 또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지.. 그 근심의 원인은 자기 자신의 안녕과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일 터.. 근심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동행하는 나의 발걸음이 되기를..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내시는 예수님. 이 단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진리, 원칙, 타협없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공동번역),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니'(새번역) 세금을 내시는 것이다. 지혜로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진리가 이 땅에서 몸을 입고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고난과 부활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따름에 대해 말씀하신 뒤에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또한 세례요한을 말하면서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죽은 자처럼 될 것에 대해서,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영광만을 누리고 자신을 드러낼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시고 죽음과 고난을 말씀하신다. 왜 그런가? 십자가의 길을 위해서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 나는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가? 십자가보다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나의 어떠함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가? 나 자신을 부인하고 다시 주님을 따라가자. 고난이 놓여져 있는 그 길을 한걸음씩 주님을 따라 가자.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는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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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약속을 주신 이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내하시고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이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계획과 안정감과 미래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목회를 하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기보다 또 이 안에서 나의 계획, 안정감,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처음에는 목숨을 잃는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목숨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미래, 나의 감정,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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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였는데 비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고백하였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베드로는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상태였지만 지금의 이 고백은 진정성이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번화하고 로마황제의 도시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도 이 고백은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겠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 삶을 드리고 그분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순교의 현장이 아니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내 삶을 드릴 수 있을까? 주어진 일에 주님께 하듯 섬기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마음 뿐이었던 전화심방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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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미 12장에서 한번 나왔다. 사실 예수님은 15장에서 이미 충분히 표적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라 무력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나 또한 표적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가르침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런 가르침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 말이다. 나 역시 나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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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다소 냉정한 거절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간절함과 겸손으로 예수님께 더 간절히 나아갔다.
이 여인이 과연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졌는지 모르나 올바른 대상을 찾은 것을 확실하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며 나아가자.
어떤 믿음, 어떤 소원을 품어야 할까?
올바른 목회가 이 땅에서 가능하다는 것,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소망을 갖자.
과연 그런 목회, 그런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시시때때로 의심과 두려움이 들지만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구하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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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전통은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사람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전통을 지킴으로 자신의 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전통은 과감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결과 관련되어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 그런 전통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분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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