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하게 되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게 된다. 이전에 자신에 대해서 가졌던 자부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잘 갖게 되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보통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이렇게 된다. 그런 때에는 하나님께서 희미하게 말씀하시더라도 감사하고 감격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고 형편이 좋아지면 어느새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 큰소리로 말하셔도 마음에 다가오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과 시련의 시기는 복된 시기이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다만 내 주변에 있는 이런저런 힘든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불평과 원망의 땔감으로 사용하지 말고, 심령을 가난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 고로 교회성장학을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다. 과연 어떤 무리가 따랐는가 하는 것이다. 병든자, 약한자, 고통당하는 자, 소외된 자들이 나아왔다. 예수님께, 복음에 이들이 끌어당겨졌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은 저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전초인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세지는 어떠한가? 교회를 말하기에 앞서 나의 말과 삶은 과연 이런 자들에게 매력이있고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힘있고 권세있는 자들에게 인기를 얻고자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를 당길 것인가? 누구에게 어필할 것인가? 그들에게 예쁘게 보이도록 나의 삶을 성형하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마3:11-4:11

기록되었으되

예수님께서는 시험의 자리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특히 사단은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하였다. 때로는 말씀으로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합리화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사단은 '너'를 위하여, '너'를 '받들어 라는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경에서 '나를 위한' 하나님 찾기를 그만두라. 그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라. 시험의 때 이렇게 말씀을 대하며 머물러 있으라. 그러면 마귀는 떠난다. 시험은 끝이 난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그동안 하나님나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이루어갈지 고민해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할 때 내 안에 일어나야 하는 반응은 회개여야 한다.

눈물, 뉘우침, 사고의전환과 물로 씻는 세례의 표지와 함께 무엇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 즉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삶의 변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먼저 요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시간의 성실한 사용이 필요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말씀을 읽어야겠다. 새해를 맞이하며 결심했던 성경읽기표 진도에 맞추어 성경읽기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는가 라는 동방박사들의 질문에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
특히 헤롯 왕은 이후에 나타나듯이 찾아서 죽이려고 어디서 났는지를 알고자 하였다.
왕으로 나신이에게 보일 합당한 반응은 헤롯 스스로도 말하였듯이 경배이다.
소동이 아니라 경배이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께 보인 경배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주님께서 말씀 하실 때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무엇인가?
주로 혼란과 시끄러움이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주님, 왕되신 주님을 경배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소동하지 않고 조용히 그 말씀에 순종하고 엎드리기 원합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셨다. 그 이후에 바로 일어난 일은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이었다. 구약의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짓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분과 분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제한적이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좀더 은혜로운 예배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이다. 오늘 예배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드릴 수 있기를.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다.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는 가운데 군병들에게 유대인의 왕 만세라는 조롱을 들었고, 십자가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통해 비웃음을 당하셨다. 실제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조롱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로만 예수님을 왕이요 구원자라고만 하고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볼 일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빌라도는 군중의 요구에 못 이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었다. 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잡혀왔고 별다른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진리냐 군중이냐. 군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따를 수 있은 담대함이 있기를 원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