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신약'에 해당되는 글 449건

  1. 2011.08.20 마19:23-30 청부나 청빈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는 구원받는다. 오늘도 주님의 제자로써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자 #생명의삶
  2. 2011.08.19 마15:16-23 어린아이들을 그 자체로 공동체에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대하자. 온전함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전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나의 시간과 물질은 나누자. #생명의삶
  3. 2011.08.18 마19:1-12 독신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의 삶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삶만큼 복되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보지 말 일이다. #생명의삶
  4. 2011.08.17 마18:15-35 최선을 다해 모든 방법을 다해 죄를 직면하게 하고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의삶
  5. 2011.08.16 마18:1-14 어린 아이들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자. 오늘 하루 손, 발, 눈의 범죄함으로 누군가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6. 2011.08.15 마17:14-27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난과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나의 안녕과 안정감으로 인해 근심하지 않고 순종하게 하소서. #생명의삶
  7. 2011.08.14 마 17:1-13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예수님. 나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시는 곳으로 가자. #생명의삶
  8. 2011.08.13 마16:21-28 '이 때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를 보게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미래와 존재감보다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자. #생명의삶
 부자 청년이 돌아간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신다.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나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면 하나님 나라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물질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 터. 청부나 청빈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무엇을 얻겠느냐고 질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버린 것의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다. 제자로써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한 보상을 말씀하신다. 보상을 위해 버린다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원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말씀은 의미심장한 구절로써 지금 포기하고 헌신했을지라도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마지막까지 온전히 주님을 따르라는 경계의 말씀으로 들린다. 장로가 천국가서 짜장면 먹을 때 목사는 짜장면 배달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 하루도 주님의 제자로써 포기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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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받아주시고 예수님께 오게 하시면서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18장 3절에서 이미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거기서는 어린아이의 어떤 특성이 언급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어린아이 자체를 받아주시고 용납하셨다. 독일성서공회 해설에 의하면 어린아이들도 공동체에 함께 속하므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진지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나온다. 함께 사는 나의 자녀들도 받아주고 진지하게 대해주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늘 하루 가까이 있는 나의 자녀들부터 용납하고 사랑으로 대해주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질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것과 온전함을 같게 생각하셨다. 마찬가지로 독일성서공회 해설에(마5:24)는 온전함이란 "히브리어에서 무엇에 마음을 다 바치는 것, 분열되지 않은 마음으로 무엇을 하는 것 또는 어떤 일을 완전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온전함이란 흠잡힐 데 없이 완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전적으로' 개방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 하루 온전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개방할 수 있을까? 마음, 시간, 돈, 관심, 사랑을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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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혼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본래의 의미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부모를 떠나서 합하여 한 몸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단 음행의 이유로는 이혼이 허락될 수 있다는 여지가 남아있다. 점점 이혼률이 높아지고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요즘.. 결혼의 본래적 의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좀 더 연구와 배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말한다. 결혼하는 삶도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이지만, 독신도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이다. 독신자들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보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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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내에서 한 지체가 죄를 범하면 처음에는 한 사람이, 그 다음에는 두 세 사람이, 그 다음에는 교회 전체가 권고하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한 사람을 정죄하려는 위험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누가 죄를 지으면 먼저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거나 함께 그 사람을 씹는 경향이 많다. 사실 한 사람을 직면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죄를 지으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우리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죄를 직면하게 하고 회개하려고 하는 것이 올바른 공동체의 모습이다.
 일흔 번씩 일곱번까지 용서하라는 것은 490번 용서하라는 의미보다는 그만큼 온전하게 끝까지 용서하라는 의미로 본인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은 존재이며,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 고백을 할 때마다 마음의 찔림이 있다. 나를 힘들게 하기에 더 이상 미워하지 않으려 세워놓은 마음의 벽까지도 허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나를 용서하신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그동안 쌓여진 마음의 벽을 또 허무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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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겸손, 순수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아이들 속에도 악함이 있음을 볼 때 성품적인 측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 의지하는 존재로서의 어린아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존재로 살아갈 때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질서와 가치를 뒤집어엎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 그 질서와 가치를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자.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실족케 하서나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손, 발, 눈으로 죄를 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결국 나의 범죄는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업신여기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나의 손, 발, 눈이 범죄하지 않기를. 그리고 누군가를 실족시키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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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간질병자 소년을 고쳐주시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시며,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너의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말씀하시면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이 옮겨지며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은 결국 믿음이 없다는 말씀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이 듣고 많이 말하게 되는 믿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믿음이 적거나 많다는 것은 무엇이며, 과연 믿음이 많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맞는가 라는 질문을 새삼 던져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믿음은 믿는 대상이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굳게 확신하며 얼마나 지속적으로 붙드는가로 이해되어진다. 신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행함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두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 이야기를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 나 또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지.. 그 근심의 원인은 자기 자신의 안녕과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일 터.. 근심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동행하는 나의 발걸음이 되기를..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내시는 예수님. 이 단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진리, 원칙, 타협없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공동번역),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니'(새번역) 세금을 내시는 것이다. 지혜로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진리가 이 땅에서 몸을 입고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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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과 부활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따름에 대해 말씀하신 뒤에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또한 세례요한을 말하면서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죽은 자처럼 될 것에 대해서,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영광만을 누리고 자신을 드러낼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시고 죽음과 고난을 말씀하신다. 왜 그런가? 십자가의 길을 위해서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 나는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가? 십자가보다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나의 어떠함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가? 나 자신을 부인하고 다시 주님을 따라가자. 고난이 놓여져 있는 그 길을 한걸음씩 주님을 따라 가자.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는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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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약속을 주신 이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내하시고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이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계획과 안정감과 미래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목회를 하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기보다 또 이 안에서 나의 계획, 안정감,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처음에는 목숨을 잃는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목숨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미래, 나의 감정,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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