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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4 오늘 주일예배 마지막 찬송..
  2. 2011.08.13 마16:21-28 '이 때부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배려를 보게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미래와 존재감보다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자. #생명의삶
  3. 2011.08.12 난 당신이 좋아(김병년, IVP)
  4. 2011.08.12 마16:13-20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오늘 하루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어떻게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주어진 일을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할 것이며, 맡겨진 성도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 섬겨야 할 것이다. #생명의삶
  5. 2011.08.11 마16:1-12 표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하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교훈을 조심하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르침, 나의 욕망을 채우며 나의 명예를 세우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의삶
  6. 2011.08.09 마5:21-28 믿음의 주가 되신 예수님, 수많은 변수와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가 있는 목회 현장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목회를 하고자 하는 소원을 들어주소서. 시시때때로 의심과 두려움이 들지만 더 간절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생명의삶
  7. 2011.08.08 마15:1-20
  8. 2011.08.07 마14:22-36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역이라는 것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주님의 손을 붙잡고 간구하며 의심치 말고 믿음의 한걸음을 내디뎌야할 것이다. #생명의삶
삶의 단상2011. 8. 14. 13:59
해아래 압박 있는 곳
주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 찬송가 460장 2절 중에서

주일예배 마지막 찬송.
이 땅의 압박 있는 곳에 주님의 정의가 살아나기를..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약속을 주신 이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도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내하시고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이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계획과 안정감과 미래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목회를 하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기보다 또 이 안에서 나의 계획, 안정감,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처음에는 목숨을 잃는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목숨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미래, 나의 감정,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공동체와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북 리뷰/기독교2011. 8. 12. 23:17
난 당신이 좋아/ 김병년/ IVP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언제나 지금 내게 닥친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사이의 괴리감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후로는 과감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결단했다.
 내가 꿈꾸지 않는다고 내 생이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풍성함은 우리의 고난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분의 풍성함으로 나의 궁핍한 삶을 채우실 것이라 말씀하신다.(103쪽)

"오늘 이밤에 우리 모두 오른손을 들고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시다. '하나님, 저 좀 그만 때리세요!"
 나는 저들의 고통과 슬픔을 해결할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하나님 앞에 함께 하소연하고 부르짖는 믿음의 선배로 그곳에 서 있었다.(126쪽)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 이유를 나는 안다. 내 말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나를 보고 싶어서 온다. 고통의 이유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고통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것이다. 자기 삶이 특이한 게 아니라 평범한 또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온다.(134쪽)

 고난당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너무도 불합리해 보이기에 하나님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불순종입니다. 믿음은 신뢰, 이해, 순종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의심은 그 중 이해에 해당합니다. 믿음에는 의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불신앙은 무관심으로서,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거나 무조건 의심하는 절대적 회의주의입니다. 신자에게 의심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지만, 불신앙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입니다."(140쪽)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원망과 원수에 대한 적대감을 하나님께 모두 토로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다." 월터 브루그만 (145쪽)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말대로 "하나님의 전 존재가 고통 속에 거하셨다.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존재 속에 있었다." 

 눈물은 힘으로도,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능히 깨뜨린다. 아내의 눈물이 완고한 남편의 교만을 깨뜨린다. 목사의 눈물이 아픔에 무감각한 시대의 무관심을 깨뜨린다. (158쪽)

십자가는 나를 위해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아픔에 동참하신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다. (160쪽)

사랑하기 때문에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외아들'을 주셨다. 이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160쪽)

 찾아가 보는 것, 그것이 먼저다. 병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찾아가 들여다보는게 먼저다. 분명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어린 방문이다.(163쪽)

 고난당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와 함께 있어 줄 친구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연약한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가 버림받고 잊혀졌다는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함께함으로써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167쪽)

 고통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중에도 겪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겪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때문에 겪는 일일 수도 있다. 
 신학자 올브라이트의 말처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해진다는 믿음처럼 진리에서 멀어진 믿음은 없다."
 이 땅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 삶이 축복이 아니다. 잃음과 얻음을 반복하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축복이다. (174쪽)

우리가 가장 자구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는 '선택의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뜻은 어느 직장으로 가든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77쪽)

폴 투르니에가 말한대로, 고난을 이기는 과정이 축복이지 고난 자체가 축복은 아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은,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179쪽)

 고난의 신비는 고난의 끝에서 우리가 그렇게 사모하던 그분을 대면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181쪽)

광야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능력과 존귀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반면에 인간의 완악함과 교만, 불만족과 연약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광야는 이러한 두 가지 실재가 벌거벗은 채 만나는 곳이다. 살아 있고 먹고 있으면서도 좀더 좋은 것을 달라고 불평하는 인간과, 인간의 불평에 때로는 분노하고 벌을 주시면서도 한결같은 은혜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만난다. (186쪽)

그러나 삶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믿음은 하나님을 더욱 또렷하게 인식하게 한다.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란다.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하는 출발점이다. 모든 것에 주도권을 갖고 사는 한, 믿음이 자라기는 어렵다. 그저 자신의 관리 능력만 자랄 뿐이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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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장로교회 청년부를 섬길 때 특새 강사로 은혜를 받았던 김병년 목사님의 책.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내가 꿈꾸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내 마음에 깊이 남겨졌다. 나는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넘어선 이상을 꿈꾸는 편이기 때문이다. 지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뭔가 뒤쳐지는 것 같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마음 속에 평안을 얻게 하였다.
 오늘날 강단의 메세지는 고통을 부인하며 성공과 축복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자신의 삶에 실제로 고통이 다가오면 어찌할바를 모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는 실제 고통을 통과하면서 갖게 된 정직한 질문과 고백을 통해 고통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축복이란 '잃음과 얻음을 반복하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목회란 어떤 의미에서는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직면하고, 함께 있어주며, 함께 걸어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그리고 성도들에게 난 당신이 좋아라고 서로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리라.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였는데 비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고백하였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베드로는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상태였지만 지금의 이 고백은 진정성이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번화하고 로마황제의 도시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도 이 고백은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겠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 삶을 드리고 그분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순교의 현장이 아니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내 삶을 드릴 수 있을까? 주어진 일에 주님께 하듯 섬기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마음 뿐이었던 전화심방을 실천하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미 12장에서 한번 나왔다. 사실 예수님은 15장에서 이미 충분히 표적을 보여주셨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라 무력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나 또한 표적과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가르침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런 가르침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 말이다. 나 역시 나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예수님의 다소 냉정한 거절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간절함과 겸손으로 예수님께 더 간절히 나아갔다.
이 여인이 과연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졌는지 모르나 올바른 대상을 찾은 것을 확실하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며 나아가자.
어떤 믿음, 어떤 소원을 품어야 할까?
올바른 목회가 이 땅에서 가능하다는 것,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소망을 갖자.
과연 그런 목회, 그런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시시때때로 의심과 두려움이 들지만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구하며 나아가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전통은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사람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전통을 지킴으로 자신의 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전통은 과감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결과 관련되어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 그런 전통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분별이 필요하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나도 주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으로 걸어가는 길에 여러가지 상황과 형편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문제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죽게 되면 어쩌나라고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한번 하나님의 아들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라가야 할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목회라는 것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것이 요즘이다. 그러나 주님의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간구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보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