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구약'에 해당되는 글 6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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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4.11.07 창41: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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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4.11.04 창39:20-40:4
  8. 2014.10.31 창37:18-36

각 사람의 분량대로(28절)
야곱은 오늘 본문에서 8명의 아들을 축복하며 모든 아들을 각각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다양하게 축복하였다. 어떤 아들은 여러가지 종류도 많고 최고의 축복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아들은 짧고 고생에 가까운 축복을 받기도 한다. 비교가 되기도 하고 우열이 매겨질법도 하다. 그러나 이 12명, 한 두명을 제외하지 않는 이 모든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간다. 각자의 분량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음을 믿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이 진짜 복이다. 만족. 복을 복되게 하는 태도이다.

여기 나눔방을 통해 정말 큰 유익을 누리고 있다. 내가 생각지 못한 귀한 묵상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성실하게 늘 올려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한다. 그러나 진실하고 깊이 있는 묵상을 보며 종종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라는 비교의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각자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게 주신 분량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 그것도 복을 누림에 있어 중요한 부분임을 새삼 느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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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7, 9절)
야곱은 요셉과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된다. 요셉은 목축업을 한다는 것을 언급하여 야곱과 온 가족이 고센 땅에 머물도록 인도한다. 야곱은 바로를 만나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언급하며 축복한다. 요셉은 야곱과 온가족을 봉양한다.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다. 온 애굽을 다스리는 바로를 축복한 것이다.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그런데 바로를 축복하는 7, 9절 사이에 야곱이 자신의 생애를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 130년이다. 이 험악한 세월이 어떤 세월이었던가? 복을 얻으려고 그리도 애썼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장자의 복을 얻으려고 속이고 도망치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씨름을 하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고. 가장 사랑하여 복을 빌었던 요셉을 잃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나고.

이것을 통해 야곱은 복이란 내가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고 이루어가는 것임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복을 소유하는 자에서 복의 존재가 되어 복을 나누고 복을 빌어주는 일을 하게하신 것을 보게된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복을 구하라. 복을 받으라. 그리고 복의 존재가 되라. 그래서 다른이에게 복이 되라. 마음껏 복을 빌어주고 복을 나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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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절)


곡식을 더 먹고 없어지자 야곱은 아들들에게 다시 애굽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이 때 유다는 요셉의 명령을 상기시키며 베냐민이 동행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말한다. 이에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잃게되면 잃으리로다 라고 말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트라우마를 겪은 야곱에게 베냐민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 아들이다. 라헬의 분신, 요셉의 분신, 무엇보다 자신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들을 형제들을 정탐꾼이라고 의심하고 시므온 마저 가둔 애굽의 총리 앞에 보낸다는 것은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극심한 기근 속에서 온 가족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자, 야곱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마지막을 내려놓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게 된다. 이 아들을 통해 위로받고 살려고 했지만, 결국은 이 아들을 내어놓았을 때 자신과 온 가족이 살게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존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우실 때, 나의 최후의 보루를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대신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2의 허벅지 관절의 어긋남. 이것이 야곱에게는 마음 중심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경험일진데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한 번이 아니라 거듭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삭을 번제단에 바침,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로다,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고백했던 예수님의 기도와 십자가, 복음을 위해 나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겠다는 바울의 에베소 장로들을 향한 설교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이 고백과 결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과 복과 생명의 역사가 흘러내려간다.

내가 기꺼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요즘 나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는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즘 계속 내가 갈등하는, 다른말로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안정된 미래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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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48절)
요셉의 꿈해석과 해결방안을 들은 바로는 그 지혜에 감탄하며 요셉을 총리로 삼는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신실하게 해결방안을 실천한다.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며 사는 삶을 엿보게 된다. 칠년 풍년 이후 흉년이 진행된다.
요셉은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이다. 탁월한 꿈해석과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을 제기했기에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총리가 된 다음이 아닌가. 요셉은 제시한 해결방안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무엇이 대안인지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지혜로운 자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을 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아는 것을 실천하는 자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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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36절)
술맡은 관원장의 천거로 인해 요셉은 바로 앞에 서게 된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말한다. 일곱 해의 풍년과 일곱해의 흉년으로 해석하면서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를 세워 대비하면 극심한 흉년에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실 일을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바로에게 꿈으로 보여주셔서 요셉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도록 이끄셨다. 엄청난 풍년이 7년이나 계속될 때 누가 7년의 흉년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대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사람 요셉을 세우시고 이것을 대비하게 하셔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신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 했던가.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 언약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교회도 극심한 풍년 이후에 극심한 흉년을 겪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지나친 알레고리가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지극히 낮은 자리와 감옥에서 연단한 언약의 사람들로 이 시기를 잘 넘어가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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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더라(8절)
술관원이 복직된지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한다. 이 때 술관원이 요셉을 기억하고 그 때일을 바로에게 고한다.

이제 요셉의 기구한 운명에서 해방될 시간이 거의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는 자신이 꾼 꿈 때문에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꿈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굽의 당대 최고의 지혜자들도 이것을 해석하지 못한다. 이 꿈이 무슨 꿈인가?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에 하나님만이 그리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만이 해석하고 풀 수 있다. 말씀, 계시, 묵시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믿는 자들에게는 그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게 된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삶을 드린자를 통해 그 꿈은 이루어지고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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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40:4)

보디발 아내의 모함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셔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는다. 그래서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왕의 시중을 들던 두 사람이 들어오게 되었고, 요셉은 두 사람을 섬긴다.

이 본문 뿐 아니라 창세기 39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강조된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 한가지를 가능케 한다. 그것은 다른 이에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도 호의를 얻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선 이렇게 호의를 입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이다.
그러나 요셉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39:4, 40:4). 물론 종의 신분이기에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섬김도 어떤 섬김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여러가지 억울함과 고난의 시기 가운데 있지만 섬김을 통해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경험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의 꿈은 섬김을 통해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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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19절)

요셉은 형들과 부모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의미하는 꿈을 이야기하고 미움을 받았다. 야곱은 형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오라 말했고 요셉은 이제 형들을 만난다. 이 요셉을 보고 형들은 꿈꾸는 자가 온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구덩이에 빠트려 죽이려했으나 르우벤과 유다의 제안으로 목숨을 건지고 미디안 상인의 손을 거쳐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팔에 집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단순히 긍정, 잘되는 나, 자아성취의 꿈이 아니다. 그것은 윗사람이 아래사람을 섬기는 이 땅의 체제전복을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꿈이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어있고, 비웃음을 당하게 된다. 윗사람들은 그런 꿈을, 그런 꿈을 꾸는 자들을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과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그 꿈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전혀 안 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성취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간다.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 무슨 꿈에 사로잡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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