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신약/고린도후서'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6.09.18 고후13:1-13
  2. 2016.09.17 고후12:14-21
  3. 2016.09.16 고후12:1-13
  4. 2016.09.15 고후11:16-33
  5. 2016.09.14 고후11:1-15
  6. 2016.09.13 고후10:1-18
  7. 2016.09.12 고후9:1-15
  8. 2016.09.11 고후 8:16-24

버림받음의 두려움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7절)

다른 이들에게 버림받는 것은 큰 상처와 낙심을 주지만, 진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주님께 버림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버림받은 자임을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러가지 공격과 비난을 받아 버림받은 자 같다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 안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인들이 선을 행하고 진리를 위해 사는, 온전한 자가 되기를 간곡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임을 아는 자의 삶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합니까?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소유와 존재를 쏟아붓는 사랑
재물을 사랑하고 또 내 자신까지 내어 주리니(15절)

사랑은 소유와 존재를 다 쏟아붓게 만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기에 방문하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 대적자들은 바울이 돈을 노리고 있다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들을 원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원합니다. 이것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자신은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재물을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을 내어준다고 합니다. 소유와 존재를 다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진정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소유와 존재를 다해 사랑하기 원합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나의 약함, 주님의 강함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0절)

나의 약함을 통해 주님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약할 때 내가 강하다는 말은 비논리적입니다. 약하든지 강하든지 둘 중 하나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내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하시고, 그 능력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내가 강해진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약함과 능력은 계속 연결됩니다. 나의 약함과 주님의 능력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과 사역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은 나의 약함 가운데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약함의 최대치, 내가 죽을 때 결국 주님이 사시는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며, 사역자입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맛보기 원합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자랑 아닌 자랑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30절)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약함을 감추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만 몇 가지 탁월함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어리석어짐을 감수하는 것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결국 본질로 돌아섭니다. 그가 자랑 아닌 자랑을 합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받음과 자신의 약함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어리석어 보이고 걸림돌이 되는 복음과 일치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중매자이자, 보배되신 주님을 품은 질그릇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는 것입니다. 주님과 공동체를 위해 어리석어지고 약해지는 것, 그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나는 세상과 다른 것을 자랑스러워하겠습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사랑, 삶의 동기이자 동력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11절)

사역과 섬김은 사랑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한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중매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다른 예수에게 유혹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교인들을 향한 사랑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을 받지 않는다는 공격에 사랑하기 때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했다 말합니다. 지금 거짓 교사들은 자신이 옳고 바른 것처럼 행하지만 사랑이 없는 그들의 결말은 열매없음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사랑이 오늘 나의 삶의 동기이자 동력이 되기 원합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싸움의 프레임 전환
그리스도에게 복종(5절)

우리의 싸움의 최종 승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공격받는 가운데 프레임을 새로 짭니다. 너 아니면 내가 승리하는 데스게임에서 벗어납니다. 이 싸움에서 무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며,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 생각, 태도임을 명시합니다. 결국 이 싸움에서의 진짜 승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너'와 싸우지 말자. '나'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자.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너희의 후한 연보로(13절)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돈이 필요를 채우고도 넘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단어 중 눈에 띄는 것은 넘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셔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신다고 합니다. 12절에서 연보가 성도들의 부족함을 보충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많이 감사함으로 넘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칼 같은 분이 아니라 넘치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도 충만입니다. 결국 이것은 우리의 지갑에도 영향을 끼쳐 다른 이의 필요를 채우는데 돈이 넘치게 할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다른 이의 필요에 '돈이 충만'하게 합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

코람 호모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21절)


하나님께 드려진 재정을 위해 공동체 안의 검증된 사람들을 세우고, 그것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드려진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가져오기 위해, 디도와 두 명의 검증된 형제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주의하며 투명하게 처리하기 원한다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이지만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정사용이 어찌 하나님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요?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도 덕이 되어야 합니다.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를 위해서 '코람 호모(사람 앞에서)'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Posted by L i v i n g R e m i n d e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