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신약/마태복음'에 해당되는 글 149건

  1. 2019.02.12 마2:1-12
  2. 2019.02.12 마1:1-17
  3. 2019.02.12 마1:18-25
  4. 2019.02.11 마12:1-13
  5. 2018.04.03 마 26:47-56
  6. 2018.04.03 마 26:36-46
  7. 2014.04.13 마26:57-68
  8. 2014.03.12 마18:21-35

*오늘의 말씀 : 마2:1-12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2:4-6)


*오늘의 묵상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박사들이 찾아옵니다. 이에 헤롯과 온 예루살렘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습니다. 결국 구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다스리는 자요 목자가 의미하는 참된 왕이 태어날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참 왕이십니다. 나의 면류관을 벗어 왕되신 주님을 경배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래전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바르게 다스리며 참된 목자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살고자 합니다. 내 마음의 보좌에 주님을 모십니다. 나의 면류관을 벗어 주님께 드립니다. 왕으로 오셔서 좌정하시고 다스려주옵소서. 주님의 다스림 아래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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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1:1-1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1:1)


*오늘의 묵상

계보에는 족보라는 의미 뿐 아니라 시대, 역사, 이야기 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이 헬라어 단어가 창세기의 제목으로도 쓰였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려는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며,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며 기쁜 소식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지손으로 오시어 모든 약속을 이루시며 구원자이자 왕으로 오신 예수님. 주님을 통해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졌으며 주님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는 이 복음을 우리가 풍성히 누리기 원합니다. 죄와 연약함에 얽매이고, 상처와 미움과 결핍이 반복되는 우리 인생에 새로운 시작이 되어 주옵소서. 새로운 시대를 열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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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1:18-25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마1:23-24)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었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말씀에 순종한 요셉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와 동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순종, 거룩, 임재를 추구하며 간구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며, 거룩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십자가로 죄를 이기신 주님의 능력을 믿으며 거룩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도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느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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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12:1-1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12:6-8)

*오늘의 묵상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과 손 마른 자를 회당에서 고치시는 것으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어겼다며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윗, 제사장, 성전보다 더 권위 있는 분이심을 말씀하시며 안식일의 형식보다 자비와 긍휼의 정신으로 살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내 인생에 가장 권위 있고 가장 귀한 분이십니다. 그 분의 마음과 삶을 따르는 일이 가장 권위 있는 일입니다.

*오늘의 기도
안식일, 다윗, 제사장, 성전 보다 더 크시며 그것을 온전히 성취하신 주님. 주님 앞에 내 삶의 모든 권위를 맡기며 따르기 원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목적과 삶의 이유가 되시며 나의 사랑과 기쁨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신앙과 삶 가운데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시고, 그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오늘과 한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깊은 사귐을 누리는 주중의 예배자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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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 26:47-56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 26:53-54)


*오늘의 묵상

유다가 배신의 입맞춤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알립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잡으려하자 제자 중 하나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 떨어뜨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군단되는 천사를 불러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다름아닌 말씀을 성취하는 능력이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하시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며 배반의 입맞춤을 당하시며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하셨던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무력하게 되셨던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과연 어떤 능력을 사모하고 구하는지를 돌아봅니다. 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능력을 구하기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 말씀을 이루어가는 능력을 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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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 26:36-46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8-39)


*오늘의 묵상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십자가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자신의 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셨습니다. 이에비해 제자들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는 말씀에도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깨어있는 것이며, 나의 소망을 이루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 뜻에 순종하게 하시는 하나님. 기도가 영적인 호흡이며 신앙의 기본임을 알면서도 늘 다른 것에 바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나의 영적 현주소를 봅니다. 그리하여 다른 것에는 민감하면서도 영적인 것에는 잠들어 있는 무감각함을 긍휼이 여겨 주옵소서. 깨어 있어서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로 깨어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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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예수를 따라

베드로는 사로잡힌 예수님을 따라왔다.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모여서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았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저들에게는 신성모독의 말로 죽일 근거가 되었다. 이 현장에서 베드로는 그 결말을 보고자 했다. 따르긴 따랐으나 멀찍이 따랐다. 동행하고 함께 고통받는 따름이 아니었다. 함께 죽는 따름이 아니었다. 결국 이 멀찍이 따름이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을 바짝 따르는 것이다. 고통과 고난의 자리에도 함께 하는 것이다. 오늘 주님을 따를 때 더 가까이서 따르기 원한다. 주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고통과 고난의 자리로 한걸음 내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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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베드로가 얼마나 용서를 해주어야 하는지를 묻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용서해야함을 말씀하시며 비유를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달란트 빚을 탕감받았지만 백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지 못한 자로 나타난다. 이 비유에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근거와 해야하는 의무가 나타난다. 용서받았기에 용서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에 우리도 다른 이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다. 특히 내가 받은 용서의 크기와 깊이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수록 내가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어떤 이를 용서하고 용납하기가 어려운가. 주님의 나를 향한 용서를 깊이 묵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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