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

가족은 이 땅에서 가장 친밀하며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보다 이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말씀하신다. 예수님께 최고의 사랑과 우선순위를 두기 원하신다. 주님은 질투가 많은 분, 인륜을 거스리게 하는 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족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어떠한가. 가족 안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까워질 수 있다는 본회퍼의 말이 떠오른다. 예수님께 온전한 사랑을 드릴 때 가족들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자. 그것이야말로 가족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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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라

오늘 본문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된다. 핍박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두려워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정말 저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제 반대에 직면하는 마음의 굳은살이라는 묵상을 했는데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소심함이 가장 두려운 하나님만을 향하여서 그 외의것에는 대범함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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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예수님의 파송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핍박과 고난을 받는 일이다. 미움을 받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다른 것보다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면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런 성향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이 쉽지 않겠다. 반대와 미움과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도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걸어가야겠다. 한번 용기 내고, 한번 한 발자국 떼고는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움츠려들지 말아야겠다. 은혜에 무감각한 굳은살 말고, 반대에 의연한 굳은살이 마음에 생겨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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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복음을 은혜로 받고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을 전하고 나누고 사역하면서 어느새 내 마음에는 댓가를 바라고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 힘들게 공부하고 조금 힘들게 사역했다는 경험을 되뇌이며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정당화했던 것 같다. 또한 이러저러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으니 내 미래는 안정되어야하고 나는 영향력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은혜롭지 못한 마음으로 하는 사역에 어찌 은혜가 깃들것인가? 은혜로 받았으니, 은혜로 섬기고, 은혜만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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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세우실 때 이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실 때 제자들과 함께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가기를 원하셨다. 일단 여기에서 큰 단절을 느낀다. 나는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권능은 어쩔 것인가? 나는 진짜 제자가 아닌건가? 아니면 이런 권능은 이 시대에는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던져보면서 소원하기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제자만이 가지는 표지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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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정말 미친 바람과 파도가 주변에서 우리를 삼키는 것 같다. 진실과 공의를 잃어버린 정치, 대기업과 부자들의 이익만을 더 늘려주는 경제, 쾌락과 소비만을 추구하는 문화, 무엇보다 세상 속에서 다른 종교들보다 신뢰를 잃어버린 교회. 과연 20-30년 뒤 교회와 신앙이 살아남아 있을까 두렵습니다. 주님 이것도 믿음이 적은 것이겠지요? 정말 믿음이 적은 것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이 모든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실 수 있는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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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1.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신앙이 견고한 사람들,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필요할 때가 많고 또 그런 분들과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죄인, 소외되고 연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분들에 대한 접촉도 없고 관심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저들에게 행한다. 나의 관심과 시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 아침이다.


  2. 예수님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동안 죄인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유효하기 위해서는 나의 죄인됨을 계속 상기해야 한다. 내가 의인으로 길을 나서면 죄인을 찾아 길을 나선 주님과 엇갈릴 수 밖에 없다. 오랜 신앙생활과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하면서도 죄인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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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그러하오이다

몸에 손을 얹기만하면 살아나겠다는 믿음,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 예수님께서 능히 하실 수 있다는 믿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병들어 누워있는 교회, 자아성취의 욕망에 눈이 먼 목회자들,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나.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안에 대한 고민도 좋고, 기존질서에 대항하여 좁은 길로 투신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중심에 믿음이 있어야 되겠다. 주님이 이 땅의 교회에 손을 얹어주시길, 주께서 이 땅의 목회자들과 그 안에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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