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도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나는 목회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부흥사로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모습이 좋아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부흥하는 여러 대형교회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그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가졌었다. 물론 목회를 옆에서 지켜보며 여러 어려움을 보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기본적으로 고생의 길이다. 짐승만도 못한(?) 길이다. 집나가면 개고생이 아니라 예수님 따라 가면 개고생이란다. 나는 목회해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가 고생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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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사역자로 살고, 능력이 드러나는 사역을 해도 그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니. 많은 시간들이고 수고를 다해 일 한 것이 이런 것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허망하고도 두려운 일이 될까?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 큰 일을 하는 것에 목숨을 바칠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이다. 크기, 영향력, 인정, 칭찬, 권력. 이것보다 아버지의 뜻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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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님께서 거짓선지자를 분별할 때 다른 것이 아니라 열매로 안다고 하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열매 즉 인격과 삶이 어떤가가 중요하다. 나는 설교와 지식을 많이 쌓는 것에 많이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인격과 삶에서 열매 맺는 것은 그만큼 생각하고 있지 못하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서 내가 가장 부족한 것은 희락의 열매가 아닌가 싶다. 좁은 길을 가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삶. 이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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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오늘 24-34절에는 염려라는 단어가 총 6번 등장한다. 염려하지 말라가 주요내용으로 새삼 다가왔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도 염려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염려는 다름아닌 이 땅의 것을 추구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믿음에 있어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을 염려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부르심이라 느끼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했는데, 또다른 차원의 염려의 모습이다. 염려하지 말자. 대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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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 기도, 금식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칭찬과 명예를 바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식이다. 주님께서 그리도 긿어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은 그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한번 페북 매일성경 나눔이 사람에게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이 흥왕하게 되는 것이 내 마음의 동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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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하게 되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게 된다. 이전에 자신에 대해서 가졌던 자부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잘 갖게 되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보통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이렇게 된다. 그런 때에는 하나님께서 희미하게 말씀하시더라도 감사하고 감격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고 형편이 좋아지면 어느새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 큰소리로 말하셔도 마음에 다가오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과 시련의 시기는 복된 시기이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다만 내 주변에 있는 이런저런 힘든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불평과 원망의 땔감으로 사용하지 말고, 심령을 가난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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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 고로 교회성장학을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다. 과연 어떤 무리가 따랐는가 하는 것이다. 병든자, 약한자, 고통당하는 자, 소외된 자들이 나아왔다. 예수님께, 복음에 이들이 끌어당겨졌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은 저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전초인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세지는 어떠한가? 교회를 말하기에 앞서 나의 말과 삶은 과연 이런 자들에게 매력이있고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힘있고 권세있는 자들에게 인기를 얻고자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를 당길 것인가? 누구에게 어필할 것인가? 그들에게 예쁘게 보이도록 나의 삶을 성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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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3:11-4:11

기록되었으되

예수님께서는 시험의 자리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특히 사단은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하였다. 때로는 말씀으로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합리화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사단은 '너'를 위하여, '너'를 '받들어 라는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경에서 '나를 위한' 하나님 찾기를 그만두라. 그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라. 시험의 때 이렇게 말씀을 대하며 머물러 있으라. 그러면 마귀는 떠난다. 시험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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