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세상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인자의 오심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 날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겠다 하셨다. 그리고 택하신 자들을 모두 모으겠다고 하셨다. 다니엘서를 생각해보면 인자가 오는 것은 이 땅의 나라와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를 세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셨으나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마지막 때이다.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자. 특별히 그 나라는 나의 인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기억하고 행하자.

무화과나무가 어떠함을 통해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여러 징조를 통해 종말이 가까워옴을 알라 하셨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이 이 일이 다 이루어진다 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종말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말이 가까웠으니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땅 사고, 집 사고, 자녀교육 시키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노후대책 마련하고 하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종말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 가운데 깨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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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2011. 9. 3. 06:34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한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커녕,
말씀을 읽고 묵상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형식적인 것 같고, 아무 느낌도 없고, 생각의 노름 같고..
그래도 계속 가야겠지..
이 몸부림이 있어야 말씀대로 사는 몸부림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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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예수님의 화 선언.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경건한 체 하지만 내면은 욕심과 죄로 가득한 이중성을 지적하신다. 이런 이중성을 버리고 내면의 거룩하지 못함을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내면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내면의 욕심과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묵상과 기도가 가장 좋은 훈련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과 같지 않게 자신들은 선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나 실상은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참 어리석고 미련하다 하나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신다면 나는 그분을 거역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가?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다면 어떤 일들을 감당하실까? 나 자신의 위치와 기득권과 안정감에 연연하지 않아야 주님이 하실 만한 일들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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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언하셨다. 특히 이들은 자기 자신만 망칠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그 심각성을 찾게 된다. 가르치는 자와 인도하는 입장에 있는 자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가르침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살펴야 한다.

 23절에서 십일조의 세세한 규정은 지키면서 '의와 인과 신'은 저버렸다고 책망을 당한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정의와 자비와 신의로 번역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율법도 행하고 그 정신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은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본질은 형식을 통해서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사이가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늘 하루 내가 하는 일들 가운데도 본질을 놓치고 형식만 남은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 나의 섬김과 사역 가운데 정의와 자비와 신의가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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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설교.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지만 은혜가 없다. 교회의 코드와 세상의 코드가 다르다.

 

1.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천국, 영생,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십자가 해석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십자가를 받아들일 것이냐?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것이다.

십자가는 기적이다. 영원이 시간 안으로 들어온 것이 예수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가라지-무늬만 그리스도인. 종교의 피상성

말씀을 받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

환난으로 쓰러짐

세상의 유혹으로 무너지게 하는 것. 우리 안에 이것이 섞여 있다. 하나님 나라로 갈수록 제해진다.

악마성- 선과 악을 판단. 하나님과 같이 된다.

 

자기 의. 남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 은혜를 manipulation하는 것이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민감함이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성령님을 요청하는 이유는 민감함을 회복해서 양심에 찔리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안의 하나님의 생명에 민감하라. 그 안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이다.

 

가라지와 알곡의 차이는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가 모르는가이다.

십자가-힘있는 사람에게 맞아죽는다라는 것을 아는 것. 돈 있는, 매너없는 놈한테 당하는 것이다.

 

우리의 탁월함을 알고도 죽는 지혜로운 바보가 되는 것이다.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악을 알고도 좁은 길을 가겠는가이다.

 

소소하고 미미한 것이라도 세상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자수성가가 아니다.

은혜- 내가 기대하지 못하는 방법. 의외성이 하나님 나라다.

 

그리스도인의 탁월함은 좁은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에게 주시는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 그 기쁨이다.

밭에 보화가 있다는 것을 나만 안다.

 

하나님 나라의 지식

성경에서는 실천적 앎을 말한다. 적용이 아니다.

맞을 때 참음을 통해 달라진 태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발을 내딛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십자가를 선택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다.

 

자신의 황폐함 속에서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의 종말점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들고 가신다. 그것이 은혜다.

 

우리의 basic trust. 아이가 아빠가 받아줄 줄 믿고 뛰는 것이다. 십자가로 가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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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지키며 살 것인가?

성스러운 것을 세속화 하는게 바리새주의다.

세속스러운 것을 성스럽게 하는 것이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것이 거룩이다. 율법을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받으면 세속적인 것이 성스럽게 바뀐다.

 

눅10장.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이웃의 주객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사랑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타자 중심이다. 타자 중심적인 민감함. 타자에 민감하지 못하면 복음도 천박해질 수 있다.

부자들 가난한 자들 심령이 가난한 자이면 우리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대통령을 대통령이 아니라 이웃으로 볼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더 가지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창3:3 사단적인 것은 계속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먹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십자가 앞에 서라.

마8:33 십자가앞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당겨온다. 그 의기를 가져오는 것이 십자가이다.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게 한다.

의지를 뽑아내어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이다.

 

오병이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잊지 말라.

만나: 하나님은 필요한만큼 딱 채우신다.

한국교회는 만나의 방법을 쓰지 않기 때문에 만나를 못 먹는다.

자기의 의지와 방향을 포기해야 한다.

공동체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마태복음이나 예수님은 재물과 관계를 말씀하신다.

돈의 윤리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채우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나님의 계획을 세우라.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눅4장. 갇혀있고 눌리게 하는 세상이 아니다.

비교하며 판단하면서 저 사람이 열등하다 느끼는 순간 하나님 나라는 끝이다.

본인 자신도 하나님의 신분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내가 누구인가 이다.

존재 본질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십자가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상처가 나음을 입는다.

하나님이 주신 자존감을 가져라.

 

공동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공동체는 만족이 있다. 만찬을 베품받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먹고 마시고 느끼고 생각한다.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려는 열망. 공감.

시시하고 미미하게 느끼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된다.

우리 안에 생명,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된다.

 

공동체.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생명, 사랑, 좁은 문을 선택할 믿음 있는 사람을 택해서 세우는 열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동체 안에서 차별을 없애고 판단하지 말아라.

선교: 가난하고 약하고 존엄함을 모르는 이들에게 존엄하다 선포하고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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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년 목사님

 

고넬료

경건- 내 길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시는가에 달려있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교제하면 길이 희미하지만 함께 걸어가는 기쁨이 있다.

로드십- 주여, 그럴 수 있습니다.

주로 인정한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다.

호칭과 해야 할 일들이 연결된다.

 

경건한 사람의 2가지 특징

1. 기도하는 사람

 기도 후에, 기도 전에 순종하라

2. 백성을 많이 구제한다.

 가난한 사람을 섬김, 경건은 삶이다.

3.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경건의 삶을 통해 편견의 공동체를 깨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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