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모든 진리는 역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양극단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그 사이 길을 걸어야 하는 긴장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긴장감을 견디지 못해서 한편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안정감을 누린다.
하지만 그 긴장감을 잃게 되면 균형을 잃게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생명력을 잃게 되는거 같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칭의와 성화
은혜와 제자도
믿음과 행함
이성과 감성
영과 육
남과 여
사역자와 평신도
교회사역과 가정사역(목회자 입장에서)
존재와 행위
타문화권 선교와 삶의 자리에서의 선교
교회에서의 예배(특수성)와 삶의 자리에서의 예배(일상성)
이 역설에서 바로 우리는 우리의 이해와 능력의 한계를 넘는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 역설은 결국 하나, 즉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긴장 가운데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의 중심이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이번학기가 경건훈련학기라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구요.
또 모든 사람이 3박4일간 주말경건훈련으로 은성수도원에 다녀오게 되는데요.
저는 이번주에 다녀오게 됩니다.
금요일부터 3박 4일로해서 다음주 월요일에 돌아옵니다.
혹시 생각나시거들랑 기도해주세요.
제가 온전히 하나님 한분과 깊은 교제와 친밀감을 누리고 돌아오도록...
이번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려고 합니다.
그저 그 분 앞에서 그분의 존재만으로 깊은 만족을 누리며...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렇듯이 굳이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그런 행복을 그분으로부터 느끼고 싶습니다.
솔직히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며 이런 것을 마땅히 누려야 하겠죠...
그것이 잘 안되기에...아니 그것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구별된 시간과 구별된 공간에 갑니다.
그래서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오늘도 삶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분투하시는 모든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저의 삶이 그러한 분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고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이 3박 4일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구별된 장소로 가는 저에게와...
일상의 장소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월요일 저녁 우연히 기숙사방 형 책상에 꽂혀 있는 '갈대상자'라는 책을 읽었다.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부인인 이영애 사모가 쓴 책...
그간 한동대의 시작부터 설립과 운영, 유지, 시설확충 무엇보다 남편인 김영길 총장의 구속사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서 어떻게 이끌어오셨는가를 보게 되었다.
미국 유수한 대학과 KAIST의 교수직이라는 안락함을 버리고 믿음으로 신생 기독교 대학총장 자리를 선택한 이후로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걸음을 떼어나가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글썽여졌다.
오늘 목회실습 수업...
원래는 최일도 목사님이 오셔야 하는데 사정이 있으셨는지 김연수 사모님께서 오셨다...
원래는 카톨릭 수녀로써 개신교에 적응하기의 어려움과 또 여러 청량리 밥퍼 사역을 해오면서의 고통들...
특히 십계에서 불꽃이 돌에 부딪힐 때의 그 첫소리 같던 남편의 목소리와 멋있었던 머리가...온 열정과 몸을 다바쳐 사역하느라 이제는 많이 빠지고 늙어버렸다며 목이 메어가는 고백을 할 때 눈물이 났다.
그래도 용기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사역을 시작한다면 모든 것을 도우신다는 것...섬김이 선교요 전도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이 두 분...한분은 평신도 지도자의 아내, 한분은 사역자의 아내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특히 내가 가는 길이 좀 특별한 길이기 때문에...항상 배우자를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또 내가 즐거워서 하는 길이기에 가는 것이지만...나의 배우자가 될 사람은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없을 뿐더러 많은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길을 갈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사역자로 살던지 평신도로 살던지...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그것에 순종하여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냥 자신의 삶의 자리에 안주하여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것...그것은 사역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유혹일게다.
차라리 믿음으로 고난을 껴안자.
말씀에 순종함으로 불확실함 가운데 자신을 던지는 것...
분명 불안과 고통과 눈물이 있겠지만...
거기엔 변화와 성장과 성숙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말이다.
지난주 토요일 간만에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읽었다.
중간고사가 가까와오는 관계로 보고서 때문에 구약을 읽고 있었다.
사무엘상을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않았고...그래서 사울이 번제를 드렸다.
번제를 마치자 약속이나 한듯 사무엘이 왔다.
결국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엇을 했느냐 물었고...사울은 대답하기를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번제를 드렸다고 변명하였다.
결국 백성이 나에게서 흩어지는 상황...즉 내 편...나의 지지자들......나의 이익이 사라지는 상황...
사무엘이 정한 날에 오지 않음...사무엘이긴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응답이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상황...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대적이 바로 앞에 다가옴...절박하고도 위급한 상황...
이 총체적인 어려움의 context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사장 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드렸다.
즉 상황의 압력에 의해서 자신의 책임을 넘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황 속에 강요하였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사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다고 예언했다.
그 마음에 맞는 사람...
여러차례 왕을 죽일 수 있었고 부하가 절호의 찬스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의 압력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황 속에 강요하지 않았던...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했던...
다윗에게 그의 나라를 주셨다.
좋은 사역지, 배우자, 탁월함, 내 삶의 구체적인 방향성...
그것들은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고...
견습선교가 다가옴에 따라 급해지고 불안한 이때...
나는 내 안의 사울을 죽여 내 마음대로 무엇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을 상황 속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신뢰함으로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기도를 해왔다.
하나님,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고...지금까지 수없이 주님께 내 삶을 드린다고 고백했지만 그것을 잠시도 지켜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는...
저의 모든 삶을 가져가 주십시요.
라고...
하지만 지난주 이런 글을 읽었다.
'요즘 자신이 드리는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당신은 어떻게 그 응답의 일부가 될 수 있겠는가?'
자기가 기도한 기도의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
자신이 기도한 기도의 응답의 일부가 되는 것...
결국 나는 내 삶을 가져가 달라는 나의 기도의 응답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나의 삶을 그 분께 온전히 '드린다'.
어제 삶 찬양팀 모임 시간 이후로 이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임 시간에 '하나님의 손에 훈련된 예배인도자'라는 책을 한 챕터씩 읽고 간단하게 나누는데...
어제는 총연습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중 연습시간에는 평가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그동안 찬양팀을 인도하면서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물론 예배는 은혜로 드려지는 것이고 우리의 반응에 의해 평가될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실수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님께 더욱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기에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피드백을 받는데 별로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심하고 사람들의 의견에 잘 요동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루어낸 결과물과 나를 객관적으로 분리시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한 말이나 나의 생각...
내가 짠 콘티나 내가 인도한 찬양...
물론 이것이 나로부터 나왔고(성령의 감동이 있었겠지만) '나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나'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때 마음이 무거워진다.
즉 그것들과 나를 동일시한다.
앞으로 누군가 나의 말이나 나의 사상, 내가 수고한 결과물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을 들을 때...
좀 더 객관적인 마음으로 나와 분리시켜서 좀 더 하나님을 섬기는데 합당하게 할 수 없었는가라는 동기를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예배 찬양인도를 하기 전에 기도했다.
나는 연약하고 무익함으로 하나님의 도움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그래서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라고...
예배 마치고 이런 저런 찬양의 개선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나는 흔쾌히 이야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뭐가 문제일까?
마음이 계속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칼빈의 기독교강요 수업을 들으면서 무거운 마음의 깊은 동기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도 예배에 있어서 나도 한부분 담당했다는...나도 수고했다는...칭찬...영광을 얻기를 원하는 마음이었다.
사역을 크기에 따라 성격에 따라 크다작다 할 순 없지만...
작은 모임에서 작은 일을 담당하면서도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도둑질 하려는 나의 마음...
앞으로 더 중대한 일을 맡게 될 때는 어떠하려는지...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