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구약/창세기'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14.10.04 창25:1-18
  2. 2014.10.03 창24:50-67
  3. 2014.10.03 창24:28-49
  4. 2014.10.01 창24:10-27
  5. 2014.09.30 창24:1-10
  6. 2014.09.27 창21:22-34
  7. 2014.09.26 창21:1-21
  8. 2014.09.23 창19:12-23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세에(12절)
아브라함의 인생여정은 백칠십오세로 마감이 된다. 이제 아들인 이삭이 모든 소유를 물려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를 잇게 된다. 그 와중에 이스마엘의 족보가 등장하여 그 자손들의 이름과 이스마엘의 생애가 짧막하게 언급된다. 언약의 직계자손이 아닌 2인자로서의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에 눈이 가는 아침이다.
2인자, 2류인생으로 이땅에 사는 날 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과 좌절을 경험했겠는가 생각해본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이삭의 대적이자 이후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기에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대적했겠거니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광야에서 어머니 하갈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난 경험으로 인해 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는 언약 속에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참여하고,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민족과 나라가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구원의 역사에 포함이 되는 것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하나님나라는 불신앙, 실수, 갈등, 상처, 좌절, 분노로 점철진 이류인생에게도 하나님의 언약, 구원, 위로가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나 또한 이방인으로 이류인생이지만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이처럼 큰그림을 그려가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한몫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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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50절)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하자 나온 대답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니 예 아니오 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여호와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이들의 신앙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많은 신 중에 한분으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인지. 일단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연장선상에서 묵상을 해나간다.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이니(51절) 그렇게 하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내가 아니오 할 권리가 있음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말씀에 보이듯이 하나님을 진정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아니오는 커녕 예 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 말씀만 하옵소서 라고 했던 백부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향한 존중, 인정, 경외, 신뢰, 믿음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수없이 주저하고 거부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가부를 말할 수 없다는 고백과 삶을 곰곰히 묵상하고 연습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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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33절)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신부감으로 생각한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의 환대를 받게 된다. 먼길을 이동하느라 피로감이 상당했겠지만 맡겨진 일을 완수하려는 마음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짜 종의 모습이다. 나 숨좀 돌리고, 나좀 추스리고 나서가 아니라 맡은 일을 이루고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에 불필요하다 느껴질 정도로 길게 서술되는 이야기도 그가 얼마나 주어진 일을 우직하게 따르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오늘 하루 나좀 살고보자가 아니라 우직한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기 원한다. 일하는 시간 개인적인 일을 최소화하고 맡은 일에 최대한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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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12절)
주인 아브라함의 명을 따라 엘리에셀은 이삭의 신부를 찾아 메소포다미아로 오게 되었다. 하나님께 순조로운 만남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를 만나게 된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15절) 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 이삭을 낳지 못한 25년이라는 순조롭지 못한 긴 시간과 대조되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은 왜, 어떤 경우에 이렇게 일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다. 극적요소를 생각한다면 인간적인 것을 제로로 만드신 후에 하나님께서 일사천리로 일을 이루어가신다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말이 수없이 반복되다 못해 정작 이루어질 때 웃음이 나오게 되는 인생역전도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단 한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응답되는 순적함도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어쩌면 성경에 묘사되지 않아 일하시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늘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일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
내가 다 이해하고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방법 앞에 오늘 하루를 그저 기도로 맡겨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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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도록(6, 8)
가나안에서 매장지로 땅을 구입하였던 아브라함은 이제 이삭의 신부감을 찾게 된다. 자손의 확장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역할이다. 여기서 신부감을 가나안에서 구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사람을 찾는다. 땅은 가나안 땅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가나안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혹은 셈 족속의 우선성이 느껴진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이 종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신부가 오지 않으려 할 때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는 것이다. 아들의 신부감을 구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 더 큰 목적인 가나안 땅에서의 번성이라는 언약을 포기하지 않는다. 눈 앞에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큰 그림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하루 나에게 여러가지 주어진 일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마쳐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인지, 그것을 이루어가는 일인지 의식하며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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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2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했을까?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들을 낳아서일 수도 있고, 고향 떠난 사람이 거부가 되어서일 수도 있다. 기적과 형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삶에서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33절 나타나듯이 어디로가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에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가? 이 시대 이 땅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기적과 형통도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오히려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하나님을 입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생각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거해야 한다.
추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이 가시는 곳에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의 현장에 내가 함께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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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6절)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이삭의 뜻은 웃음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담겨있다. 이전의 불가능하고 터무니없어서 웃었던 웃음과 지금의 놀라움과 기쁨이 담긴 웃음이다. 불신앙과 행복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 어떤 것이 온전히 나의 믿음으로 이루어졌다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불신앙과 의심과 원망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실함으로 끌어안으셔서 우리 안에 이삭을 잉태하게 하신다.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13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앙과 인내하지 못하여 태어난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 아예 그분의 시야에서 제외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렇게 하셨기에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계의 갈등의 시작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아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요소로 사용되어진다 볼 수 있지 읺을까?나의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 갈등요소, 실패작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한 그림의 일부분으로 쓰여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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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롯을 재촉하여(15), 롯이 지체하매(16)
천사들은 롯에게 속한 모든 가족을 데리고 소돔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비웃습니다. 이렇게 되자 천사가 재촉합니다. 그러나 롯은 지체합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그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둡니다. 그리고 산으로 피하라고 했지만 무엇이 아쉬운지 근처 성읍으로 피신합니다. 천사는 재촉하고 손을 잡아 이끕니다. 그러나 롯은 지체하고 산이 아닌 가까운 성읍에 머뭅니다.
죄로 인해 죽을수 밖에 없고 심판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끌어 내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죄의 달콤함과 세상의 가치관이 주는 유익 때문에 믿음과 거룩의 길을 걷기를 지체하고 중간에 주저앉습니다.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하나 그래도 소망하고 간구합니다. 주님. 저를 재촉하여 주시고, 저의 손을 이끌어주소서. 하나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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