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_신약/누가복음'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8.02.01 눅2:8-20
  2. 2016.03.25 눅23:26-43
  3. 2016.03.24 눅23:13-25
  4. 2016.03.21 눅22:39-53
  5. 2016.03.07 눅19:11-27
  6. 2016.02.20 눅 13:22-35
  7. 2016.02.18 눅13:1-9
  8. 2016.02.17 눅12:49-59

*오늘의 말씀 : 눅2:8-2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8-11)


*오늘의 묵상

온 세상의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통치자들이 아닌 밤에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힘과 자원을 독점하기에 더 필요한 것이 없는 배부른 자들이 아닌 천시받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복음이 증거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고 비워짐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큽니다. 결국 나에게 복음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나눔과 섬김으로 낮아지고 비워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루살렘 왕궁의 통치자들이 아니라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증거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증거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낮아짐과 비움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도 주님의 오심이 진정 복음이 될 수 있기 위해 낮아지고 비워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복음을 누리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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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나와 이 땅에

눅23:26-43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34절)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이 모아진다. 예수님을 따르며 우는 여인들에게 '자신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에 대한 연민과 동정보다 죄와 심판을 바라보며 회개를 말씀하신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께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신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건 자체 뿐 아니라 예수님을 거부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근본적인 죄에 대한 용서와 구원의 의미까지 확장해본다.

마지막으로 좌우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 중 예수님께 긍휼과 자비를 간구했던 자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 생애의 어떤 시점에 상관없이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본다.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주님의 고난과 고통을 생각하며 동정과 감사의 눈물을 흘려도 좋다. 그러나 그 눈물이 죄의 회개를 통한 의와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쉬운 눈물, 반쪽의 눈물이 되고만다. 주님,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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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뜻

눅23:13-25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25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해당할만한 죄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놓아주려고 하나, 무리들은 세 번이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 결국 빌라도는 이 여론에 굴복하여 그들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준다. 수천년동안 사도신경에 등장하여 정죄받게 되는 결정적 시점이다.

무죄이지만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무리들의 뜻은 부당한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무리들 속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있었다고 본다면,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철저히 오해하였다. 열광이 분노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대중의 흐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볍고 피상적이며 무서운가.

그러나 역설적이며 신비하게도 이렇게 부당한 '그들의 뜻'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뜻'에 수렴되었다. 겟세마네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을 포기한 것과 함께. 이 모든 것이 신비 속에 십자가라는 뜻으로 모아진다.

뜻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며 절망할 때가 많다. 다른 이들의 뜻에 나를 맞추지 못해 괴로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구속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저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 만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도 내 삶 속에서 십자가의 뜻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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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십자가

눅22:39-53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40절)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특징적인 말씀이다. 기도에 대한 강조이다. 예수님의 기도와 관련하여 몇 가지 특징들이 드러난다.

먼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 특별히 하는 것도 아니고, 위급할 때 하는 것이 아닌,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였다. 또한 유혹(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목적을 위해 기도한다. 고난, 순종, 결단의 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힘은 기도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는 것이 기도다. 나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품는 일이 기도를 통해 가능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이미 고난을 경험하셨으며, 순종할 힘을 얻으셨다. 기도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셨다. 기도는 십자가이다. 제자는 기도로 십자가를 진다. 육신의 고단함과 바쁜 일들이 아닌 기도를 짊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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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충성

눅19:11-27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17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자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다. 결국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상당 시간이 걸린 뒤에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헤롯과 아켈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받으러 로마에 간 역사적 사실이 배경이 된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후에 이 땅을 떠나 하나님 우편에서 다스리다가, 정한 때에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할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종들이 의미하는 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평가하신다. 똑같이 한 므나, 즉 당시 3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것을 맡기신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의 평가는 능력과 이윤의 많고 적음 보다는, 자세와 태도를 중요시한다. 특히 말씀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는지를 보신다. 종종 주님의 관심은 작은 것에 있는 듯 하다. 작은 자에게 대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신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불성실하거나 게으르게 대하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충성은 작은 것에서 그 여부가 드러나는 것 같다. 누가 알아주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성실함으로 감당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오늘 내가 충성해야 할 작은 것은 무엇일까? 가족들과의 시간이 그렇다. 또한 이번주간 부터 시작되는 대심방에 앞선 준비가 그렇다. 작은 것, 남이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이 보신다. 작은 것에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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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문

눅 13:22-35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될 자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들어가기를 원해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동서남북에서 온 사람들은 들어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의 위치가 뒤바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 안에 있지만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의 바깥에 있었지만 주님을 믿는 이방인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없는 사랑과 용서의 예수님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도 좁은문으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문이십니다.
오늘 먼저된 자는 어떤 자일까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 신앙생활한 지 오래된 사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당된다고 보여집니다. 목회자인 저야말로 먼저된 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나중될 수 있음을 알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믿음의 좁은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나의 신분, 나의 경험, 나의 신앙연수가 아니라 오늘도 예수의 기준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낮아지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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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회개해야

눅13:1-9
회개하지 아니하면(3, 5절)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언급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를 하십니다. 또한 이어지는 비유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를 받습니다. 다행히 현재 이 심판은 유보가 되었으니 열매를 맺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계속되어야 할 회개를 생각하게 합니다. 늘 죄에 치우치는 나의 실존, 죄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세상의 흐름이 있기에 회개는 반복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말씀에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보고 방향과 행동을 새롭게해야 합니다. 그렇게 잘못된 것들을 가지치기하여, 삶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야 합니다.

주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회개가 필요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회개해야 할 존재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듯이, 주님의 제자인 나도 날마다 회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향해, 주님을 향해 방향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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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가 필요한 이 시대

눅12:49-59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56절)

예수님은 성령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성령이 임하실 때에 회개로 성령을 받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갈등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했기 때문에 이것을 분별하고 깨닫는 자는 회개로 반응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회개로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분별해내야 합니다. 참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시대의 분별과 옳게 판단한 결과는 회개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에 성령을 받고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성경과 역사와 사람을 꿰뚫는 통찰력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응답이라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성령충만하고, 세상의 가치와 갈등을 일으키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리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회개. 불 받아라. 그리고 변화하고 불화하고 화해해라. 너, 회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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