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기독교2018. 6. 1. 12:35

잔 다르크는 톨스토이처럼 모든 길을 거부하지도, 니체처럼 모든 길을 수용하지도 않음으로써 교차로에 고착되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의 길을 택하여 벼락같이 그 길을 따라갔다. 108

그녀는 무언가를 행했던 아주 실체적인 인물이었던 반면에,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변가에 불과했다. 109

전통은 선거권의 확장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전통이란 모든 계급 가운데 가장 낮은 계급, 곧 우리의 조상들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이다. 전통은 어쩌다가 권력을 쥐게 된 거만한 소수 지배층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모든 민주주의자는 사람들이 출생시눕ㄴ에 의해 그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을 반대한다. 117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비록 하인일지언정 좋은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어쨌든 나로서는 민주주의의 개념과 전통의 개념을 따로 분리시킬 수 없다.  117

바로 나는 내가 속한 골치 아픈 특수한 문필가 계층을 믿기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주름살을 믿는 것이다. 117

이런 것들이 해결된 다음에는 동화 철학이 두 번째 위대한 원리가 등장한다... 현학적 냄새를 풍기기 위해 나는 그것을 조건부 기쁨의 교리라고 부를 것이다. 131

그렇지만 깨지기 쉬운 것이 썩기 쉬운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유리를 쳐 보라. 그러면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냥 유리를 치지 말아 보라. 그러면 천 년을 견딜 것이다. 요정의 나라에서든 지구에서든 사람의 기쁨도 바로 그런 것처럼 보였다. 행복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곧 어느 순간에든 할 수 있으나 할 이유가 종종 분명하지 않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부당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134

나는 동화들을 아기방의 마룻바닥에 두고 떠났는데, 여태껏 그만큼 분별력 있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또한 전통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모를 떠났는데, 이제까지 그처럼 분별력을 갖춘 급진적이거나 보수적인 현대적 유형을 발견하지 못했다. 137

첫째 이 세계는 거칠면서도 경이로운 곳이며, 현재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현 상태로도 무척 즐거운 장소라는 확신과 둘째, 이런 거침과 즐거움 앞에서 우리는 당연히 겸손해야 하고, 그토록 기이한 친절의 기이한 제한사항에 마땅히 순복해야 한다는 확신이다. 138

첫째, 나는 현대 세계 전체가 과학적 숙명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아무 결함도 없이 개현되어 왔으므로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138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대체로 생명이 아니라 죽음에 의해 야기되기 때문이다... 이를 대중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해가 규칙적으로 뜨는 것은 그 일이 결코 지겹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의 일과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의 용솟음 덕분에 영위되는 것이다. 141

어린이들은 생명력이 충만하고 열정적이며 홀가분한 기분을 갖고 있기 때무에 어떤 것이 변함없이 반복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또 해 줘요"라고 말하고, 어른은 녹초가 되기까지 그것을 반복해서 행한다. 아이들과 달리 어른은 단조로운 행휘를 보고 미친 듯이 기뻐할 정도로 강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런 반복적인 행위를 무척 기뻐할 정도로 강하신 것 같다. 하나님이 아침마다 해를 향해 "또 해봐"하고 말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저녁마다 달에게 "또 해봐"하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42 

하나님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영원히 변함없는 열정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죄를 지어 늙어버렸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젊기 때문일 것이다. 142

자연의 반복현상은 단순히 되풀이되는 현상이 아니라, 무대에서 받는 앙코르 때문일지도 모른다. 142

첫째, 이 세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세계는 초자연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기적인지도 모른다. 또는 자연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기적인지도 모른다.

둘째, 마법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고, 의미는 그것을 뜻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느끼게 되었다. 이 세계는 예술작품과 같은 인격적인 면이 있다. 그게 무슨 의도든지 간에 강렬한 의도가 거기에 담겨 있다.

셋째, 나는 그것이 아름다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넷째, 이 세계에 대해 감사하려면 겸손과 절제의 모양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참으로 이상하고 모호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모든 좋은 것은 최초의 파산에서 살아남아 보존된 신성한 잔유물이라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크루소가 자기의 물건을 건졌듯이, 자기의 좋은 것들을 파선에서부터 건져내었던 것이다. 151.


5장 세계의 깃발

낙관주의자는 당신의 눈을 주시하는 사람이고, 비관주의자는 당신의 발을 주시하는 사람이다. 155.

사람은 과연 이 세계에 속하는 일이 좋은지 묻기도 전에 이미 여기에 속해 있다... 본질적인 문제를 요약하자면, 그는 어떤 동경심을 품기 한참 전에 이미 충성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56.

이 둘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핌리코를 사랑해 주는 일인 것 같다. 그것을 사랑하되 세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초월적인 유대감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157.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지킴으로써 도덕을 얻은 셈이었다. 그들은 용기를 함양하지 않았다. 신전을 위해 싸우다 보니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결함을 함양하지 않았다. 제단을 위해 스스로를 정결케 하다 보니 깨끗하게 되었던 것이다. 159.

비관주의자의 악은 그가 신들과 사람들을 질책하는 점이 아니라, 자기가 질책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에게는 사물에 대한 일차적이고 초자연적인 충성심이 없다. 162

그러면 보통 낙관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악은 무엇인가? 낙관주의자는 이 세계의 명예를 변호하고 싶은 나머지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것이 문제이다. 162.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쁜 낙관주의(회칠하는 것, 모든 것을 엉성하게 변호하는 것)가 합리적 낙관주의와 함께 온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낙관주의는 침체를 낳는다. 반면에 개혁으로 이끄는 것은 비합리적인 낙관주의다. 162

자기가 사랑하는 곳을 망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장소를 개선하게 될 사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핌리코의 어떤 특징을 사랑한다면(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그는 핌리코 자체에 반대하면서까지 그 특징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냥 핌리코 자체를 사랑할 경우에는, 그곳을 황폐하게 만든 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그 개혁이 과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은 신비주의적인 애국자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163.

믿음과 혁명이라는 우리의 거대한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이 세계를 타협의 일환으로 차갑게 수용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를 뜨겁게 미워하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기쁨과 분노가 서로 상쇄되어 그냥 자족하는 상태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강렬한 기쁨과 더 강렬한 불만족을 원한다. 우리는 우주를 우리가 습격해야 할 괴물의 성으로 느끼는 동시에 저녁에는 돌아갈 수 있는 우리의 오두막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167. 

달리 말하면, 순교자가 숭고한 것은 바로 생명과의 궁극적인 연줄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자기 바깥에 둔다. 그는 무언가를 살게 하려고 죽음을 택한다. 자살이 비열한 것은 자살자에게 존재와의 이런 연줄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파괴자일 뿐이며 영적으로 우주를 파괴한다. 170.

기독교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은 내면을 들여다볼 뿐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경이감과 열정을 품은 채 신적인 동반자와 신적인 우두머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음과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사람은 내면의 빛과 함께 홀로 내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해처럼 아름답고 달처럼 청명하며 군기 달린 군대처럼 무서운 저 바깥의 빛을 명백히 인식하는 즐거움이다. 176. 

이 세계를 정말로 즐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해체하느라 바빴고, 덕스러운 사람들은 세계를 무너뜨릴 정도의 관심이 없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기독교가 갑자기 진입하여 독자적인 답변을 내놓았고, 세계가 마침내 그것을 정답으로 수용했다. 당시에도 정답이었거니와 지금도 정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답변은 마치 칼로 휘두르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잘라 버렸고, 어느 의미로든 감상적으로 묶어 놓지 않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하나님을 우주로부터 분리시켰다. 요즈음 일부 그리스도인이 기독교로부터 제거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독특성이야말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했던 유일한 이유였다. 그 특성은 기독교가 불행한 비관주의자는 물론이고 더 불행한 낙관주의자에게도 제공하는 답변의 핵심이었다. 178.

그리고 모든 기독교 유신론의 뿌리 어구는, 마치 예술가가 창조자이듯이 하나님은 창조자라는 것이다... 모든 창조와 출산은 곧 분리의 행위라는 이 원리는, 모든 성장은 뻗어나가는 것이라는 진화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우주를 가로질러 일관성 있게 작용하고 있다. 여인은 한 아이를 출산하는 중에도 한 아이를 잃는다. 모든 창조는 분리이다. 출생은 죽음만큼이나 엄숙한 이별이다. 179.

또한 나는 기독교 신학에서 단단한 대못같은 두드러진 특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고 세계를 그 자신에게서 분리했다는 도그마적인 주장이었다. 181.

기독교적 낙관주의는 우리가 이 세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에 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고기를 구하는 다른 여느 동물과 같은 하나의 동물이라고 독백함으로써 행복해지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하나의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말로 행복했다. 내가 모든 것을 묘하게 느꼈던 것은 옳았다. 나 자신은 모든 것보다 더 못한 동시에 더 나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의 즐거움은 모든 것의 자연스러움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산문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은 초자연적인 것에 비추어 모든 것의 부자연스러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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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4:44-5:10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5:1-3)

*오늘의 묵상
모세가 선포하는 율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 언약의 갱신이며 가나안 정복 역시 새로운 과업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변함없는 명령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열조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살아있는 세대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언약의 항시적 현재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갱신과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출애굽 2세대와 새롭게 언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언약은 과거의 유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유효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살아계시며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 혹시 내 신앙이 이것을 잃어버렸다면 갱신과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역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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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4:32-43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신4:39-40)


*오늘의 묵상

모세는 지난 모든 역사를 상고하라 권면합니다. 출애굽의 구원과 시내산 현현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요 자비로우신 분임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고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지난 역사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지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순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지난 경험은 내 신앙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오늘의 순종을 요구합니다.


*오늘의 기도

창조, 출애굽,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자비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지나온 날 들을 돌아볼 때도 그 어떤 것 하나 하나님의 손길이 안 미친 것이 없음을 감사드립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깨달음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오늘 순종하게 하셔서 과거의 감사와 미래의 소망이 내 삶에 늘 풍성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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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4:15-31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4:23-24)


*오늘의 묵상

호렙산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인재를 경험했던 이스라엘에게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거나, 하늘의 천체를 보고 미혹되어 경배하지 말라 하십니다. 또한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섬기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인격의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순간 그것은 우상으로 전락하며,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숭배하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자아숭배입니다.


*오늘의 기도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엄중히 경고하시는 하나님. 보는 것의 영향력이 크기에 형상화하려는 인간의 탐미적 추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결국 거기에 나의 욕망을 투사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나를 섬기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그 안에 있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찍어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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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4:1-14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신4:5-6)


*오늘의 묵상

1-3장에서는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했다면, 4장에서는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을 통해 순종만이 생명을 가져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을 통해 주변 나라들에게 지혜롭고 거룩한 백성으로 칭송받고 약속된 큰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순종이 앞날을 좌우합니다. 순종이 생명입니다. 순종이 최고의 선교이며 복의 통로가 되는 비결입니다.


*오늘의 기도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에서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을 가까이 하여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하시고, 감동받고 결단한 것을 삶 속에 실천하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생명력이 넘치며, 주변 사람들이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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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3:12-2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신3:18-20)


*오늘의 묵상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 머물러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선봉에 설 것을 요청 받습니다. 자기의 소유에 안주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섬김의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행동(doing) 또는 소유로 사람을 판단하며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being)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들로 하여금 요단 서편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선봉에 서도록 하신 하나님. 우리도 나의 소유에만 집착하고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주신 사명을 따라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수고를 감당하게 하옵소서. 소유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이 시대정신에 굴복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 답게 사는 하루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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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2:1-25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신2:2-3)


*오늘의 말씀

세일 부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제 북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돔, 모압, 암몬의 땅을 지나는데 이들은 혈연관계의 민족들이니 이곳은 평화롭게 지나가라 하셨습니다.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향하는 모습은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지연되고 돌아가는 듯 보여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과 시간이 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이며 지름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38년의 광야생활 이후에 출애굽 2세대를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하신 하나님. 몇 줄로 요약된 광야의 생활이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용서, 돌봄, 인내, 긍휼, 자비를 헤아려봅니다. 출애굽 1세대가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2세대를 세우셔서 가나안 땅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내 삶에 찾아오는 실패에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번째 기회를 소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회복의 길, 소망의 길을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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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신1:34-46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신1:38-39)


*오늘의 말씀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보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역과 반역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 1세대들은 모세를 포함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심판을 받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온전한 믿음으로 순종했던 갈렙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한 여호수아는 2세대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성경을 대하는 우리는 또다른 2세대로써 믿음과 신뢰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믿음과 신뢰를 보인 갈렙, 여호수아, 출애굽 2세대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따르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성경을 대하며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2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과거의 잘못과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나의 언행심사 가운데 벌어지는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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